[시론]클 놈'들을 향한 소망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시론]클 놈'들을 향한 소망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승인 2014-08-06 13:58
  • 신문게재 2014-08-07 17면
  •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사람들이 복날을 그렇게 열심히 챙기는 줄 미처 몰랐다. 방학이랄 것도 없이 바삐 움직이는 교수나 직원들이 딱해서 밥 한번 같이 먹자던 우리도 복날을 골랐으니 지루한 일상을 깨려는 마음은 같은가 보다. 예약도 받지 않는 채 자리 비는 대로 손님을 받아 몹시 북적거리는 식당, 메뉴가 특이했다. 삼계탕 1만원, 닭볶음탕 큰놈 3만5000원, 클놈 2만8000원, 망내 2만3000원. 주인장의 신선한 발상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흔히 대중소로 분류하는 딱딱함을 벗어나 각각에 특별함을 주는 아이디어였다.

메뉴를 보며 웃다 보니 문득 두어 주 전에 받았던 어느 학생의 메일이 떠올랐다. 직전 학기 내 수업을 잘 들었다는 인사와, 기대보다 좋지 않은 성적에 대한 속상함과, 한번 연구실로 찾아와 진로에 대해 의논하고 싶다는 내용의 제법 긴 편지였다. 마음이 짠~해진 나는 그 학생의 시험지와 보고서 등을 꺼내 다시 훑어보았다. 빠짐없이 출석했고(성실하군), 객관식도 주관식도 정확하게 채점이 되었고(그래도 점수는 어찌할 수 없고), 보고서는 좋은 점수를 받았다(역시 자기 표현은 잘 하는구나). 여하간 학점은 위에서 네 번째 등급인 B0 이었다.

사실 B학점은 낮은 성적이 아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A가 아니면 나쁜 점수라고 생각하고 속상해 한다. 저학년에서는 시원치 않은 성적으로도 큰 걱정 하지 않고 다니던 과거와는 달리 요즈음 학생들은 일찍부터 성적관리를 하고, 자기가 왜 낮은 점수를 받았는지 일일이 확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점수에 매달리는 모습이니 교수 입장에서는 썩 유쾌하지 않다.

그러나 이 학생처럼 자기 성적을 받아들이면서도 아쉬움을 표현하는 학생인 경우에는 교수의 마음도 안타깝다. 시험이야 어찌 보았든 잠재력이 큰 학생이기 때문이다. 하긴 아직 크지 않은 학생들은 모두 앞으로 '클 놈'들이다. 현재의 부족함을 돌려서 생각하면 앞으로의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지표를 맞추기 위해 가차없이 상대 평가를 적용해야 하는 교육 시스템을 원망하며 '클 놈'에 대한 인격적 예를 갖추어 최대한 자상하게 답장을 썼다. 답장뿐만이 아니라 개강을 하면 그 학생을 불러 차라도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눌까 싶었다.

흔히 사람들은 실수나 실패를 통해서 배운다고 말한다. 그런데 실수나 실패를 경험하는 것 자체만으로 배움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배움의 핵심은 경험에 대한 성찰과정이다. 그 경험에 대해 구체적으로 해석해보고, 자기 자신에게 그 경험이 주는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 무엇을 고쳐야 할 지 알 수 있다. 당일치기 습관 때문인지, 시험을 만만하게 생각한 오만 때문인지, 시험불안이 심한지, 컨디션이 나빴는지 등등.

긍정의 힘이 우리를 성공적인 삶으로 이끈다고 한다. 그런데 잘 한 것만을 기억하거나 못한 것도 잘했다고 각색하는 것이 긍정은 아니다.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긍정이고, 이것이야 말로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의 에너지가 된다. 그러나 자기를 성찰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더욱이 이십 대 초반의 나이에.

학생을 만나 아쉬운 마음을 들어주어야지, 기대에 못 미쳐 속상했겠다고 공감해주어야지, 내가 미처 모르는 너의 장점은 무엇이냐고 물어야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리라. 하긴 방학을 지내는 동안 스스로 깨우치고 돌아와 나를 감탄하게 할지도 모르겠다. '큰 놈' 들의 성과는 멋지고 대단하다. 그러나 '클 놈' 들의 좌충우돌 성장기 또한 살 맛 나는 세상이라고 느끼게 해준다.

지식이 홍수처럼 넘치는 이 시대, 교육은 지식 전달에 급급할 게 아니라, 이런 저런 일로 위축된 작은 이들에게 '클 놈'이라 말해주고, 강점을 찾아주며, 자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하고 도와주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큰 놈'에 대한 칭찬도 중요하지만, '클 놈'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소통이 더 많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큰 놈'보다 '클 놈'이 훨씬 더 많기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