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언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 |
우리나라가 문화예술진흥에 대한 시책 강구, 권장, 보호ㆍ육성의 차원(문화예술진흥법)을 넘어 문화정책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밝힌 것은 1980년 제5공화국 헌법이 처음이다. 이러한 문화국가의 원리에 따라 1988년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문화ㆍ예술 사무를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로 규정함으로써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문화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본격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이어 1990년대 지방자치와 함께 밀어닥친 지방화의 물결은 지역문화정책에 쉼 없는 풀무질을 하였다.
중앙정부는 2001년을 '지역문화의 해'로 지정하여 일 년 동안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러나 지역문화정책이 서울 중심의 시혜적 관점에서 펼쳐져서는 안 된다는 등 그 패러다임의 뿌리부터 변화해야 한다는 각성의 시간이 되었을 뿐이다. 지방정부들은 문화 사업이나 프로그램의 단순한 시행을 넘어 제도와 시스템으로까지 정책적 관심을 넓히더니, 1997년 경기문화재단을 필두로 현재까지 광역문화재단 13개, 기초문화재단 44개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지역의 생활문화진흥, 지역의 문화진흥기반 구축, 문화도시ㆍ문화지구의 지정 및 지원, 지역문화재단의 설립 등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된 지역문화진흥법은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과 문화국가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 법 시행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당장 '지역문화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이를 근거로 세워질 각 지자체별 실천계획들은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인 지역문화진흥 사업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지역문화진흥법과 시행령에는 아쉬운 점들이 보인다. 일단 둘만 들어보기로 한다.
먼저, 지자체로 하여금 지역문화진흥 재정의 확충에 필요한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면서도 그 실천적 방법을 밝히지 않았을뿐더러 지역문화진흥 재정의 확충에 필요한 예산 지원도 '할 수 있다'고만 했지 '해야 한다'고는 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제1조에서 법 제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으뜸 수단으로 제시한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는 국가의 지역문화진흥 재정 확충에 대한 확고한 의무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가 수도권 일극화(一極化) 문제를 풀어야 하는 국가의 상위 책무이지 어찌 지방정부의 하위 책무이겠는가.
다음, 문화에 대한 '분권'과 '자치'의 비전이 미약하다는 점 또한 아쉽다. 지역문화의 활성화는 지방자치의 발전에 기여하고, 지방자치의 발전은 지역문화의 활성화에 기여한다. 지역문화의 활성화와 지방자치의 발전이 선순환구조를 이룬다는 뜻이다. 1980년대까지의 지역문화정책의 근본 한계는 바로 지방자치의 부재 때문이었다. 이에 2014년 2월 4일 열린 '지역문화진흥법 시행령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라는 소극적 차원이 아닌 적극적 차원의 '문화분권'과 '문화자치'를 법의 목적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마땅한 주장이 나왔던 것이다.
이제 지방정부에서는 '지역문화진흥 조례'를 서둘러 제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 대전시는 이미 준비 중인 것으로 듣고 있다. 대전의 문화예술 관련 조례 11개 중 적어도 '문화예술진흥 조례', '문화격차 해소 및 진흥 조례', '생활예술진흥 조례' 등 셋은 그 제정 목적이나 내용이 지역문화진흥법 및 시행령과 여러 면에서 비슷할 것이다. 차라리 잘됐다. 이번 기회에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대전문화예술의 진흥과 대전시민의 삶의 질 향상에 반석이 되는 훌륭한 조례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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