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규 문화칼럼니스트 |
어느 해였던가. 충청도 어느 양반 댁에 전해오는 술 담그는 법을 따라 두견주를 담가 봤다. 붓글씨로 아래아자, 된시옷의 옛날 언문 투 글씨의 기름먹인 한지를 펼쳐 놓고 정성껏 빚어 보았다. 용수에서 뜬 술이 생각처럼 곱지 못했다. 그러나 병에 넣어 시원한 지하실 한쪽 구석에 놓고 살폈더니 점점 호박색이 짙어져갔다. 실험실에 부탁해 확인했더니 알코올도수는 18도, 여름이 가고 가을 겨울 이듬해 제 돌이 돌아올 때까지도 효모가 탱탱하게 살아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부드럽고 은은한 술의 향이었다. 술이 잠자면서 또 다른 모습으로 익은 것이다.
30여 년 전, 세계의 술 전문가 2000여 명이 모인 스코틀랜드 큰 모임에서 '술맛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각자가 술을 하나하나 마셔 보고 그 맛을 형용사로 적었다고 한다. 다양한 표현이 있었다. 결국 술맛이란 술이 지닌 향(香)으로 집약되었다. 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코를 막고 마시면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술을 넘기고 나서 천천히 숨을 내 쉴 때 코끝에 닿는 향은 술마다 다르다. 이 때 코끝에서 맡는 향이 술맛이라는 것이다.
세계의 소문난 술들은 거개가 자기만의 독특한 향을 자랑한다. 그 술만이 지닌 개성 있는 향을 위해서 연구와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좋은 향을 지니게 하려면 원료나 발효과정도 중요하지만 잠을 잘 재우는 일도 중요하게 여긴다. 잠자기 좋은 환경 즉 좋은 그릇(나무통이나 항아리 등 용기)과 좋은 방(땅 밑이나 토굴 속 온도와 습도가 적합한 저장고)에서 자야한다. 산골의 거친 돌들이 물길을 타고 하구로 내려가면서 오랜 시간 부딪치고 갈려 동글동글 몽돌이 되듯이 술도 잠을 자는 동안 거친 향이 부드럽고 은은해진다. 그래서 10년 묵었네, 20년 묵었네, 50년 또는 100년을 묵었네 하면서 잠잔 햇수를 자랑한다.
우리나라 전통 술은 그 많은 종류의 술들이 모두 저마다의 독특한 향을 자랑했다. 달빛처럼 은은한 향이었다. 중국의 옛 시인들이 즐기던 정향(丁香)이란 향은 어떤 것일까? 양조장을 경영하는 친구한테 부탁해서 실험해 본 적이 있다. 술 한 말에 작은 정향 꽃봉오리 반개가 적량이었다. 한 개를 온통 넣으면 향이 진해 오히려 역겨웠다.
김치 담그듯 술도 집집마다 가풍 따라 절기 따라 '우리 집 만의 자랑'이 있었다. 이 아름다운 맛의 전통을 뭉개 없앤 것은 일제(日帝)였다. 1909년 통감부는 우리 정부에 주세법을 만들라고 권했다. 그 때 만든 주세법(酒稅法 2월 13일 법률 제3호)에서 술의 종류를 청주, 약주, 백주, 탁주, 소주로 국한시켰다.
그리고 이듬해인 1910년 치욕적인 망국과 함께 일제는 한술 더 떠서 '조선술 말살'을 서둘렀다. 주세령(1916년 7월)을 만들어 우리 술은 '조선주인 탁주, 조선주인 약주, 소주'로 국한시켰다. 우리 맑은 술 청주를 술의 종류에서 빼 버린 것이다. 그리고 청주란 이름은 일본식 청주(倭淸酒)에만 쓰도록 했다.
우리 전통문화를 끝까지 지키다 가신 대전의 선비 조병호(靜香 趙柄鎬)선생은 일제 강점기 때 제사에 올릴 술이 없어 축문에 '…왜(倭)청주를 올릴 수 없고 천한 탁주를 올릴 수도 없어 감주로 대신 올리니 흠향하시옵소서.'라 쓰고 감주를 올렸다고 했다. 그는 우리 청주 빼앗긴 일을 늘 원통해하였다.
광복 70년을 맞으면서 일제가 말살한 우리 술을 되살리지 못한 채 왜 청주 수입은 날로 늘어가고 향이 없어 좋은 술 근처에 얼씬대지 못하는 증류식 소주와 탁주를 국주(國酒)운운하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 술의 깜깜한 미래를 어찌해야 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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