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진 배재대 입학사정관 (전 대전대신고 교장) |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똑똑한 아이가 되라고 '아인슈타인 우유'를 먹여 키웠습니다. 이놈이 초등학교 다닐 때에 영~ 세계적 인물은 못될 것 같아서 우유를 바꿨습니다. 서울대학에 가라고 '서울 우유'로요. 그런데 중학교엘 들어가니 서울대학도 입학하기 힘들 듯했습니다. 아쉽지만 한 단계 낮춰야 할 것 같아 '연세 우유'로 바꿨습니다. 그래도 실력이 턱도 없어서 마음을 비우고, 건국대학이라도 가라고 '건국 우유'를 먹였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니. 건국대학 근처에도 못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우유를 바꿨습니다. '저지방 우유'로요. 저어~쪽 지방에 있는 대학이라도 붙어주길 간절히 기원하면서. 하지만 그것도 힘들어 보여서 또다시 '3.4 우유'로 바꾸게 되었답니다. 3년제, 4년제 가리지 않고 합격만 해달라고.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그 친구는 아이들에게 '매일 우유'를 마시게 한답니다. 매일매일 빠지지 말고 학교라도 잘 다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이 부모의 심정이다. 우리들이 어렸을 적에는 우유가 모유보다 더 좋은 줄 알았다. 자녀들의 성장과 발육을 돕기 위해서 먹이는 우유 하나를 고를 때에도, 부모는 아이들이 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염원하는 마음까지 담는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가치와 욕망은 각기 다르지만 '행복한 삶'을 원하는 것은 모든 이들의 공통된 소망일 것이다. 행복이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거나 실현했을 때에 얻게 되는 만족감 즉, 자아실현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학교에서는 학생 개개인이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진로를 생각하고, 미래의 직업을 그리면서 거기에 맞는 준비를 하도록 지도한다. 공부하기 싫은 학생이 굳이 대학에 진학할 필요는 없다.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으로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응용방법을 교수하고 연구하며, 지도적 인격을 도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들은 생산직종 외에는 취업을 할 수가 없는 형편이란다. 그러니까 이력서에 한 줄을 써 넣기 위해서 대학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진학률이 80%에 가까우니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장가가거나 시집가는 데에도 지장이 있다. '국적은 바꾸어도 학적은 못 바꾼다'는 말처럼 출신학교로 낙인찍어 편을 가르다 보니 악착같이 명문대학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대기업에 취직하고, 예쁜 아내를 얻을 수 있으며, 동문회에서 보내는 조화가 마지막으로 빈소를 장식하게 된단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어 학교가 조용하다. 그런데도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은 공부에 지쳐 파김치가 된 학생들의 눈동자가 빛나고, 교무실에서는 학교생활기록부를 정리하는 선생님들의 무거운 어깨 사이로 웃음소리가 새어나온다. 그리고 상담실에 모여 앉은 선생님과 학생들은 마냥 진지하기만 하다. 길게는 2년 반, 짧게는 반년씩 지도하면서 선생님은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 지역에도 유능한 교수진, 우수한 시설, 전통 있는 학과와 졸업생들의 활약이 눈부신 대학이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학생들은 서울대, SKY대, 수도권 대학, 지거대(지방의 거점대학), 지잡대(지방의 잡스런 대학)로 나누어 놓고 골라잡으려고 한다. 자신의 형편이나 학교와 학문의 특성은 생각지도 않고, 서울에 있는 대학을 찾아서 인서울 하겠다거나, 수도권대학을 기웃거린다. 선생님들은 이런 학생들을 붙들고 알맞은 학교를 추천하면서 씨름하는 중이다. 이러한 노력은 우유를 골라 먹이던 부모님의 심정과 같은 마음일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