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연 변호사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거주민들의 분쟁이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지만, 이번 이스라엘 측 공습은 '학살'과도 같기에 국제사회의 비난이 그 어느 때보다도 거세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군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이번 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달 12일에 발생된 이스라엘 청소년 3명의 실종사건에서 기인된다. 학교에서 귀가하던 이스라엘 청소년 3명이 실종되었는데 거의 20여일 후에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이스라엘 당국은 팔레스타인 과격단체 하마스의 소행으로 의심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심하게 압박해 곳곳에서 분쟁이 속출하였고, 급기야 이스라엘 과격단체가 보복으로 팔레스타인 청소년 1명을 납치 후 불에 태워 살해하자 양측의 감정이 폭발하였다.
하마스의 로켓포 발사를 핑계로 이스라엘 군은 가자지구에 미사일과 전투기로 맹폭을 가해왔고, 군사력에서 게임이 되지 못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속수무책으로 그 폭격을 온전히 다 맞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비극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연원을 먼저 살펴보자. 팔레스타인 지역은 원래 아랍 원주민들이 대대로 평화롭게 목축을 하면서 살아오던 지역이었다. 이 지역에 그 옛날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왕국과 유대왕국을 세워서 거주하였던 적이 있었는데 모두 2000여년 전의 이야기다.
유대왕국이 신바빌로니아에 멸망하면서부터 유대인들은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전 세계를 떠돌며 생활해 왔다. 유일신 여호와를 믿으며 선민사상(選民思想)으로 무장하고 집단생활을 해 오지 않았다면 민족자체가 보전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인의 연고지역으로 정리하기에는 유대인들은 너무 오랜 세월동안 그 지역을 떠나 있었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국가를 세울 절호의 기회를 준 것이 영국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하던 오스만투르크가 독일편에 붙었다. 이 오스만투르크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은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 지역을 이른바 '약속의 땅'으로 인정해 주고 그곳으로 복귀하는 운동인 '시오니즘'을 지지해준다고 약속하였다.(1917년 벨푸어 선언)
전쟁이 영국 측 승리로 끝나고 영국이 이 지역을 위임통치하게 되자 유대인들은 영국을 믿고 무작정 이 곳으로 몰려들었다. 특히, 나치의 유대인 탄압은 이런 시오니즘 운동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유럽 각지에서 유대인들이 순식간에 이주를 해 왔고,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갓 창설된 UN이 이스라엘의 국가 수립을 승인해 줌으로써 졸지에 그곳에 유대인들의 국가인 이스라엘이 생겨난 것이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유대인들은 침략자들과 다름이 없다. 유대인들이 갑자기 몰려와서 내 땅과 집, 그리고 생활터전을 빼앗아 간 것이 아닌가. 전후사정이 이와 같으니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을 공존하자며 좀 더 우호적으로 대했어야 했다.
유대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때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호된 시집살이한 며느리가 시어머니 노릇 독하게 한다'더니 이스라엘은 지금 나치에 당한 것만큼이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혹독하게 탄압하고 있다.
일부 이스라엘 시민들의 몰상식한 행동도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스라엘 군이 가자지구에 미사일을 날리는 광경을 구경하기 위해 국경지대인 스데롯 언덕에 모여서 망원경, 간이의자, 간식 등을 지참하고 공연관람하듯 즐긴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불과 70년 전에 나치에게 학살당한 기억을 벌써 잊었다면 너무나도 헛된 역사이다.
지금 흘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눈물은 나치에 학살당하며 유대인들이 흘렸던 그때 그 눈물과 같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평화롭게 해결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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