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초대석]冊(책)이라는 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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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초대석]冊(책)이라는 부적

손미 시인

  • 승인 2014-07-20 14:05
  • 신문게재 2014-07-21 16면
  • 손미 시인손미 시인
▲손미 시인
▲손미 시인
나라에 삼재가 꼈나보다. 이상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대학생들이 가득한 강당이 폭설로 무너져 내리고 수학여행을 떠난 배가 침몰하고 도심 한 복판에 헬기가 추락하고 수도관이 폭발하고 지하철에 화재가 발생했다. 우리에게 붙어 있는 숨조차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세상이다. 정치니 국가니 하는 차원을 넘어 이젠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과연 우리는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 이런 세상을 사랑하라고 아이들에게 교육해도 되는 걸까. 어른들조차 옳고 그름을 판단할 힘이 없고 타인과 공존할 마음이 없는 이 끔찍한 세상은 과연 안전한 걸까. 자신의 배에 금은보화만 쌓아 놓고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않는 이 세상. 진실보다는 자신의 아파트 한 채, 고급 승용차, 그럴듯한 명함에만 훌륭함이라는 수식어를 붙어주는 이 세상을 사랑하라고 가르쳐도 될까.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부터 되찾아야 한다. 내 의견과 다른 의견도 경청하고 배려할 수 있는 힘, 인간을 알고 이해하는 마음부터 길러야 한다. 그 힘은 책 속에 있다. 책이 없는 사회에서 올바른 판단과 새로운 생각은 사치인지 모른다. 언론이 말하는 대로 뉴스에서 방송하는 대로 믿고 잊어버리려는 태도 역시 브라운관 밖의 진실은 생각하지 않는데서 나온 결과다.

서점의 가판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베스트셀러를 읽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지금 이 병든 사회에는 처세술과 부자 되는 법과 행복을 끌어오는 방법이 아닌 문학과 철학과 역사를 수혈해야 한다. 우리는 문학과 철학과 역사를 잊고 자동차를 사기 위해 아파트를 사기 위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살고 있지 않은가. 국어국문학과, 역사학과, 철학과 등을 통ㆍ폐합하는 대학들의 속내도 정신은 내려놓고 기계처럼 몸만 움직이는 취업의 현장으로 학생들을 내몰아 실적을 올리려는 것 아닌가. 애초에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판단해 아무런 저항도 없이 정책에 백기를 든 것이 아닌가.

삶은 자주 좌초된다. 의외의 곳에서 복병이 나타난다. 이 미궁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실타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말 그대로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 속엔 인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는 부드러운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의 문장가 이인로는 “세상 모든 사물 가운데 귀천과 빈부를 기준으로 높고 낮음을 정하지 않는 것은 오직 문장뿐이고 훌륭한 문장은 마치 해와 달이 하늘에서 빛나는 것 같아서 감출 수 없다. (중략) 아무리 부귀하고 세력 있는 자라도 문장에서는 모멸당할 수 있다”고 말하며 문장을 유일한 평등의 매개체로 보았다.

그러나 바쁘고 피곤한 현대인들에게 책을 읽지 않는다고 비난만 할 수는 없다. 영상과 기술이 텍스트를 정복했고 고백하자면 필자도 책 읽는 것보다는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낸다. 차분히 책을 읽으려면 몇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겨우 집중할 수 있다. 선천적으로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책상에 앉는 것만으로도 곤혹일 수 있다. 이런 시대에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사방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 책상 밖에도 얼마든지 책이 있기 때문이다. 대전문학관, 전국 각지의 문학관이나 문학테마파크에 방문해 작품을 만나고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된 고전을 찾아보며 문학을 다르게 읽을 수 있다. 역사박물관에 방문하거나 역사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방법, 대전시민대학 1층에서 열리는 인문고전특강, TED 강의를 듣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색다르게 인문학을 읽을 수 있다. 서점에 나가보면 아이들을 위한 만화로 된 고전과 신화, 역사책도 쉽게 구할 수 있다.

필자는 출판시장을 활성화 하자는 운동가도 아니고 책 세일즈맨도 아니고 인문학 강연을 진행하는 기관과도 아무 연관이 없다. 다만 이처럼 이상하고 이상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리들이 현상을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에서 말이 길어졌다. 악재가 반복되는 세상에서 우리 스스로 우리의 숨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인간을 이해하고 생각할 힘을 기르자는 것이다. 이 악재에 인문학만한 부적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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