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규 목원대 건축학부 교수 |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어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백년전쟁이 한창이던 14세기에 영국군은 프랑스의 대부분 지역을 손안에 넣었지만 프랑스 북부도시 '칼레(Calais)'는 점령하지 못했다. 칼레시는 영국군에게 포위당했으나, 영국군의 거센 공격을 1년 여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그러나 식량이 떨어지고 외부로부터 더 이상의 원병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칼레 시민들은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항복하며, 자비를 구하는 사절단을 보내게 된다. 이러한 칼레시민들의 항복에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칼레시민의 생명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영국군에 반항한 책임을 져야하며, 칼레시민을 대표하는 6인을 처형해야 항복을 받아주겠다”고 요구한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따슈 드 쌩 피에르(Eustache de St Pierre)'는 맨 먼저 처형을 자청하여 나서게 되며, 칼레시장, 법률가, 상인 등의 귀족 5명이 동참하게 된다. 영국 왕에게 보내진 이들 6명은 처형을 받기 위해 교수대에 서게 되는데, 임신한 영국 왕비의 간청에 의하여 에드워드 3세는 이들의 목숨을 살려준다. 이후부터 칼레시민을 대표한 이들 6명의 용기와 희생정신은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기원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일부의 주장도 있지만, 필자가 판단하기에 이러한 기원이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간에 칼레시의 사회지도층이 보여준 사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단어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기원에 근거하여 요즘에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최근에 대통령이 지명한 2명의 국무총리 후보자는 청문회에 서보지도 못하고 낙마하였으며, 심지어는 신임을 받지 못해 물러났던 총리가 다시 국무총리에 임명되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또한 장관 후보자들의 청문회를 보면 오히려 더 많은 의혹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문회에서 밝혀진 장관 후보자들은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탈세, 군 복무 특혜, 논문표절, 제자 논문 가로채기 및 부적절한 주식거래 등, 심지어는 위증논란까지 제기되었다.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일반적인 국민들과 동떨어진 역사의식을 가진 후보자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요즘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더욱 거세게 요구되고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진정한 문제는 우리사회의 일반적인 사람들이 사회지도층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거세게 요구한다는 자체가 사회지도층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만큼 우리사회는 계층적 갈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발전하고 국민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느냐의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해야 한다.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첫 번째 방법으로서,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가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기부가 될 수 있고, 봉사 활동이 될 수도 있으며, 각자가 처해져 있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 판단된다. 경주 지방에서 '400년간 재산을 쌓지 마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으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경주 최부잣집의 가훈이 새삼 떠오른다. 더블어 장관후보자가 우리들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았는데도 우리가 그들을 미워한다는 것은 우리들 자체가 나보다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분노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이러한 문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만들지 않으며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므로 남을 좀 더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