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언론인이란 '지금,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핵심을 압축하여 전달해주는 존재다. 국민을 대신하여 정부와 공직자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책무를 지닌 언론이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의 근간으로 불리는 연유다. 언론을 통제해 정보를 오염시키거나 바른말 하려는 언론인의 입을 틀어막는 것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질식시키는 지름길이다.
국무총리와 장관후보자들에 대한 언론의 검증보도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전제다. 법과 제도의 맹점을 보완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국무총리나 장관후보자들에 대한 언론의 검증보도는 재산ㆍ병역ㆍ납세 등에 대한 법적인 준수 여부를 점검하는 넘어 고위직 공직자들의 국가관과 역사관, 도덕성 등을 따져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동문서답하는 함량 미달의 후보자들도 더러 있다지만 대부분 공직 후보자들은 '검증용'으로 제출하는 국가관ㆍ역사관과 관련된 문서를 '건전하고 투철하고 신성하게' 작성할 터이다. 누구나 맛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탈법적 혜택을 오랫동안 누려왔던 자가 건전한 시민성과 준법을 말하고, 일반 시민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아 정작 군복을 입고 전선에 서야 할 때는 병역을 기피했다는 의혹을 받은 공직 후보자들이 '앞으로' 국가가 위난에 처할 때 국난극복의 최전선에 서겠다는 '미래의 애국과 충성다짐'을 호소하는 쇼가 청문 과정에서 벌어진다.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이야기이지만, 국무총리ㆍ장관후보자들의 국가관과 역사관 등의 검증은 그들이 인사청문회에 제출하는 '서약서'들의 맞춤법을 따지는 것으로 충족될 리 만무하다. 수십 년에 걸쳐 일해 온 경력과 자질, 일반 시민 혹은 공적인 인물로서 남겨 온 갖가지 언행들을 두루 그리고 낱낱이 살펴봄으로써 국무총리나 장관 후보자로서의 국가관과 역사관, 도덕성 등을 따져 묻는 것이 언론이 취해야 할 자세다.
그 과정에서 언론은 일반 시민들이 묵과할 수 있는 정보를 찾아내고 그 정보들 중에서 국가 사회적으로 공유가 필요한 핵심적인 정보를 일정한 지면과 시간에 담아 시민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알권리 대행자로서 언론의 책무이자 전문직 종사자로서 언론인의 역량 발휘가 절실히 기대되는 때다.
KBS가 지난 6월 11일,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의 국가관ㆍ역사관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뉴스를 내보냈다. 일반인들도 구해볼 수 있는 공개된 3개의 동영상에 담긴 방대한 강연 정보 중에서 KBS는 시민들에게 알려야 할 정보를 헤아려 수집하고 다시 압축해 전달했다.
해당 동영상들을 직접 시청하고 3개의 강연 녹취록을 촘촘히 읽어보면, KBS가 전문직 종사자로서 공직후보자에 대한 검증보도를 성실하게 수행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언론으로서 책임을 방기하고 권력에 굴종하거나 시민들에게 불공정했다는 비난을 받아 온 공영방송사가 모처럼 시청자들의 사랑과 격려를 받은, 안타깝지만 제대로 된 '사건'이기도 했다.
그런데 KBS의 공영성 회복과 공정보도 실천을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그들 중 일부는 교회 안에서 벌어진 '간증'을 짜깁기하여 불공정한 왜곡보도를 했다며 국가 행정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KBS를 처벌해달라고 제소했다. 어떤 학회는 일부 비전문가를 초빙해 KBS 보도의 공정성 여부를 따져보겠다는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가 눈총을 받기도 했다.
지난 수년간 '불공정 심의'로 지탄을 받아 온 방통심의위가 기어이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정당한 검증보도를 중징계할 태세다. 훌륭한 고위 공직후보자를 찾아내는 일도, 공직후보자에 대한 언론의 검증보도를 기대하는 일도, 좋은 고위 공직자와 좋은 언론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좋은 시민이 되기도 어려운 시대다. 그래도 고백하건대, 언론인은 우리 시대 최후의 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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