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오 대전문학관장 |
그런데 놀랍게도 시민들의 관심이 대단하였다. 사회 각 분야에서 누구보다 바쁘게 일하는 분들이 시(詩)까지 쓴다는 점에 대한 경외심을 감추지 못하고 전시에 출품한 작품의 세련미나 심오함을 떠나서 의미 있는 일로 이야기하고 기억해 주었다.
물론 추진하는 입장에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너무 바쁘거나 오랫동안 시를 써보지 않은 탓으로 좋은 시를 내지 못하는 분들의 마음이 서운하지는 않을는지, 행여 호응해주는 분들이 너무 적어서 계획대로 추진하지 못해서 실패하지는 않을는지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모험을 무릅쓰고 추진한 것은 문학이 더 이상 문인들만의 것이 아님을 일깨워주고 문학생활을 일상화하도록 시민사회에 확산하는데 효과적인 이벤트가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인사들이 진솔한 마음을 담은 시편들을 내주시고 많은 시민들이 기성시인들의 작품보다도 더 큰 호응을 보내주어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전시가 되었다. 그리고 해마다 명사시화전을 열어봤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일찍이 구상 시인은 행정고시나 사법고시에 시 한편을 써보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기한 바 있다. 전통적으로 시를 쓰는 것은 선비의 기본 소양이었다. 문화시민이 되고 문화도시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서 시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소위 시인이란 분들만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요즈음은 SNS등을 통해서 하루에도 여러 편의 시들을 접하게 된다. 어떤 면에서 문학의 소외가 아니라 문학은 보편화되고, 그 소통방법은 과학문명과 융합되어 보다 신속하고 간편해졌다. 그러므로 문학작품의 유통도 전문성과 문명의 이기에 적응하는 방법들이 요구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기성 문단은 간이역에 서성거리다가 달려가는 고속역차 뒷전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천적 창작기반과 고도의 유통구조가 서로 겉돌면서 창작의 기초를 더 튼튼히 할 기회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詩)라는 글은 특별할 것이 없는 생활인의 소양이 되어간다. 원활하게 시를 쓰고, 보내고, 이해하는 문학생활을 위해서 창작을 회피하지 말고 선뜻 착수하면서 체험을 통해서 숙달시켜 갈 것이 요구된다.
지난해에 이어 금년에는 특히 문학을 제외한 예술계 원로들의 시를 모아 제2회 명사 시화전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7월 25일 전시를 시작해서 9월 중순까지 시민들에게 보여줄 예정이다. 전시할 작품을 모으는 과정에서 여러 원로들이 '시를 써보지 않았다'고 사양하다가도 권유를 받아드리기로 일단 마음먹으면 나름대로 쓴 시를 보내주시는데 받을 때마다 그 순수하고 진지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이렇게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확신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루속히 벗어나야 할 것은 다만 시를 쓰는 것을 주저하는 마음뿐이다.
시라는 양식을 며칠만 익히면 세련된 시를 쓸 수도 있다. 더 욕심을 낸다면 전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한국인의 전통 시라 할 수 있는 시조(時調)를 쓸 수도 있다. 문학관에서는 우리도 중국의 한시(漢詩)나 일본의 하이쿠나 서양의 소네트와 같이 범국민적으로 시조를 쓸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서 매주 토요일마다 시조 짓기 동호인 학습을 지속하고 있다. 더불어 가정마다 가족이 쓴 시로 시화를 만들어 함께 마음을 나누는 우리가족 시(詩) 갖기 캠페인도 벌리고 있다. 한 편의 시를 함께 감상하면서 가족공감대를 튼튼히 하고, 정서적으로 윤택해지며, 문화적 수준을 높이는데 일조하기 위해서이다.
시를 쓰는 명사들을 기다리는 시민이 있고, 꾸밈없는 시를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명사가 있어 온 시민이 시를 쓸 수 있는 명사가 되기까지 명사시화전을 추진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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