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주 갤러리봄 관장 |
자신의 아픔을 어떻게 작품으로 형상화했을지 그녀의 작품세계가 궁금했다. 오전이었음에도 예술의 전당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바빴다. 친구끼리, 연인끼리 온 사람들도 많았지만 어린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단위의 사람들도 제법 많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회화와 설치미술, 퍼포먼스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해 왔으며,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전시는 1층부터 3층까지 이어져 있었고, 회화를 제외한 작품들은 사진 촬영이 가능해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다. 설치미술작품에 서 있는 사람들의 행렬은 언뜻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연상케 했다.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전은 개인전임에도 불구하고 전시된 작품 수가 굉장했다. 회화작품은 2개의 전시실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단번에 눈을 사로잡는 규모가 큰 설치미술작품들도 제법 많았다. 그렇게 많은데도 모두 한결같은 구조와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게 상당히 인상 깊었다. 그녀의 작품을 한 번 보고 나면 작가의 이미지와 함께 머릿속에 또렷한 모양으로 각인될 것 같았다.
어느 작품의 '나는 눈을 사랑한다' 라는 제목처럼 쿠사마 야요이는 정말로 눈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수많은 작품에 여러 색깔의 눈이 잔뜩 그려져 있었고, 쿠사마 야요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처럼 무궁무진하게 박혀 있는 도트 역시 눈동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쿠사마 야요이는 작품의 제목 하나하나도 그냥 짓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제목은 짧은 시를 읽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문학적이었다. 그 중 몇 가지 얘기해 보자면 '사랑은 그토록 화려하지만, 세상은 늘 전쟁에 사로잡혀 있다', '투쟁 후 우주 끝에서 죽고 싶어라', 또 '진실을 쫓는 빛나는 별들은 우주 너머 저 멀리서 빛나고, 그 진실을 찾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 더 빛났다'와 같은 제목들이 특히 곰곰 생각해 보게 했다.
그녀의 작품 키워드는 대략 사랑, 여인, 인생, 봄으로 추려볼 수 있었다. 반복된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는데 그만큼 같은 주제에 대해 오래 사유하며, 그것들을 끊임없이 작품으로 그려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생이 그러하듯 예술에도 정답은 없다.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등 내면에 있는 것들을 추상적이든 구체적이든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어내는 것이 예술의 시작일 것이다. 설치미술작품을 보기 위해 긴 대열에 서서 기다리다가 문득 벽면에 쓰인 글귀가 보였다. “나는 나를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유년시절에 시작되었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하여 예술을 추구할 뿐이다. - 1985, 쿠사마 야요이”
그녀에게 있어 예술은 자신이 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자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확고한 주관과 신념을 가지고 예술과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그녀. 85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아직도 성실하게 작품활동을 해나가고 있다고 한다. 쿠사마 야요이가 그림 속에 정성 들여서 찍었을 무수한 점, 눈동자 그리고 선들은 설치미술작품에서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공간에 색색의 동그란 모형 또는 불빛으로 고스란히 존재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그렇게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마주보고 있는 거울의 효과로 드넓게 펼쳐진 마치 현실과는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간 것 같기도 했다.
실제 그대로 보이지 않는 그 세계가 쿠사마 야요이가 그토록 괴로워하던 환영처럼 보였다. 예술은 분명 자신이 직접 하는 것으로도, 또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음을 믿는다. 실체가 없는 내면의 정신적 아픔과 괴로움들은 예술이라는 하나의 매개로 자세히 들여다봄으로써 차츰 아물어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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