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위해 오른 山… 삶의 의미를 배웁니다

살기위해 오른 山… 삶의 의미를 배웁니다

건강때문에 산행시작… 덕유산 구간땐 산행 금지구역 어겨 '벌금'도 '보만식계'를 아시나요… 보문산ㆍ만인산ㆍ식장산ㆍ계족산 둘레산 섭렵

  • 승인 2014-07-15 14:08
  • 신문게재 2014-07-16 9면
  • 대담=이승규 행정자치부장(부국장)·정리=이영록 기자대담=이승규 행정자치부장(부국장)·정리=이영록 기자
[중도초대석] 세번의 백두대간 종주 김기원 대전도시철도공사 기술이사

대전도시철도 김기원(58ㆍ사진) 기술이사는 대전에서도 손꼽히는 아마추어 산악인이다. 구청 공보계 근무시절, 갑작스럽게 찾아온 당뇨병 극복을 위해 산에 올랐지만 이제는 백두대간 종주를 3회 기록한 것은 물론 '우리 땅, 우리 산하, 우리 삶'을 주장할 정도로 애착이 깊다. 바쁜 업무에도 주말과 휴일의 시간을 쪼개 산에 오른 지도 벌써 20년이 훌쩍 넘는다. 어지간한 산악인보다 산에 대한 지식과 우리 산에 대한 애정이 많다. 백두대간 종주 뿐 아니라 대전 인근에 있는 산이란 산은 모두 섭렵했다. 보문산ㆍ만인산ㆍ식장산ㆍ계족산의 앞글자를 따 '보만식계'라는 닉네임을 짓기도 했다. 김 이사를 만나 산에 오른 계기와 백두대간 종주와 관련한 일화, 앞으로의 산행 계획 등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1997년 IMF 이후 많은 사람이 건강을 챙기기 위해 산행을 한다. 다른 운동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을 뿐더러 혼자서도 너끈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체력과 능력에 맞게 고봉을 오르기도 하고, 동네 인근 야산을 다니기도 하고, 주변 지인들과 어울리거나 홀로 심신 단련을 위해 산에 오른다. 1924년 에베레스트 정복 도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영국의 유명 산악인 조지 말로니는 “왜 계속 산에 오르느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기 때문(Because it is there)”이라고 답했다.

산에 오르면 내려와야 하는데 굳이 오를 필요가 있겠느냐는 물음에 산에 오르는 진정한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김 이사 역시 산에 오르는 이유는 분명하다. 산악인 엄홍길의 말처럼, 조지 말로니의 답처럼 뚜렷한 철학과 계획을 갖고 산을 찾는다. 김 이사는 1992년 2월부터 1994년 4월까지 2년 조금 넘게 구청 공보계장으로 근무했다. 당시 공보계장은 담당 업무 이외에 특성상 술자리가 많아 매일같이 심신이 지칠 수밖에 없었다.

책임감이 강한 성격상 알을 대충 할 수 없는 노릇이어서 지쳐가는 심신은 물론 부득이하게 집안일에 소홀했다. 앞만 보고 달리던 김 이사에게도 시련이 닥쳤다. 공보계장 막판에 당뇨병 판정을 받은 것이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술에 고된 업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때 김 이사는 의료진의 권유와 더불어 스스로 산에 올라야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앞도 뒤도 볼 것 없이 한마디로 살기 위해 산에 오른 것이다. 처음에는 동료와 유성구 수통골을 오르며 산에 적응해 나갔다. 시청으로 발령받은 뒤에는 직원들로 구성된 산악회(산사모)를 결성, 회장을 맡아 대전 인근의 산들을 찾아다녔다.

김 이사는 “직장생활이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스트레스가 참 많은 것 같다”며 “어떤 때는 잘못한 것이 없거나 일 처리가 바르게 돼도 질책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승복하지 못하면 너무 괴로운데 산에 오르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산에 오르는 이유를 설명했다. 살기 위해 오른 산이지만 지친 심신을 달래고 호연지기를 기르면서 스스로를 강하게 단련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척추, 백두대간 종주의 시작

어느 정도 산행에 익숙해진 김 이사는 백두대간 종주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2005년 1월1일을 기점으로 지리산 천왕봉에서 진부령까지 700여㎞에 달하는 남한쪽 백두대간을 31구간으로 나눠 북진하며 11개월에 걸친 종주를 계획했다.

당시 시청 산악회 동료중 먼저 백두대간을 종주한 전문가를 앞세워 뒤를 따라가는 방식이었다. 모두 81명이 함께 해 첫 종주의 기쁨을 만끽했다. 김 이사의 도전은 또다시 이어졌다. 1차 종주가 끝난 지 불과 1개월여 만인 2006년 1월1일부터 2차 종주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진부령에서 지리산 천왕봉, 웅석봉까지 연장해 남진하는 방식으로 36구간에 걸쳐 백두대간 종주를 성공했다. 스스로의 대견함과 기쁨에 사랑의 연탄배달(8000장)까지 할 정도였다.

김 이사는 “백두대간 종주중 황철봉 너덜지대와 희양산 남봉, 대야산 내리막 절벽, 한계령~점봉산 구간은 상당히 위험했던 곳으로 기억한다”며 “그래도 곰배령이나 선자령, 괴산 쌍곡계곡, 오대산 청학동, 삼척 두타산 무릉계곡 등은 워낙 경치가 수려해 위험하거나 힘든 기억이 모두 눈 녹듯이 사라지고, 특히 동틀 무렵 휘파람새 울음소리를 들으면 전율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회상했다.

3차 종주는 최근에 마쳤다. 2011년 4월부터 시작해 34구간으로 나눠 매주 2회 산행하는 방식으로 1년6개월 만에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김 이사는 “산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스스로의 건강을 챙길 수 있고, 적극적인 사고 함양,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통해 업무 추진시에도 성과가 높게 나타난다”며 “산에 오르는 이유가 바로 자신과의 싸움인 만큼 스스로를 이겨내지 못하면 가정과 직장 등 어느 곳에서도 성공적인 삶을 살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위협적인 순간, 범법자 신세까지

김 이사는 백두대간 종주시 여러차례 위협적인 순간을 겪었다. 300㎏은 족히 나가 보이는 멧돼지와 맞닥뜨려 옴짝달싹 못하고 그저 멍하니 쳐다보기만 한 상황, 함께 중주에 나선 지인이 산에서 발을 헛디디면서 떨어져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상황, 야간 산행시 길을 찾지 못해 새벽녘까지 산속을 맴돈 상황, 갑작스러운 일기불순으로 저체온증의 공포에 시달린 상황 등등.

이 뿐 아니다. 제대로 된 백두대간 종주를 위해서는 출입금지 또는 출입제한 구역을 지나고픈 욕심이 생겨 간혹 이를 어기는 경우에 빠진 것이다.

김 이사는 “덕유산 구간을 지날 때 산행이 금지된 곳으로 들어갔다가 벌금 50만원을 낸 적이 있다”며 “범법자(?) 신세가 됐지만 이후에는 내 욕심을 채우기보다 자연에 순응하며 있는 그대로의 산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자연은 인간이 거슬러서는 안 되고, 개발 논리에 치우쳐 자연을 파괴하면 그 재앙은 고스란히 사람들에게 되돌아온다”며 “함께 어우러져 자연 속에서 공존해야 하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진정한 산행의 의미, 계속되는 도전

김 이사는 산에 대해 '낳는 산'(가락국 수로왕 구지봉ㆍ단군 신단수), '사는 곳'(生-산 밑에서 살고 삶과 정신 및 의식주 해결), '쉬는 곳'(死-부모님 산소ㆍ산에 갔다 왔다ㆍ산에 쉬러 간다)으로 해석한다.

그만큼 우리의 문화는 산과 물이 밀접하게 연관돼 어우르는 문화이고, 학창시절 교가를 살펴봐도 지역의 대표 산을 지칭하는 '000산 정기 받아'라는 노랫말이 꼭 있기 때문이다. 김 이사의 도전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지리산 3대 종주로 꼽히는 화대종주(48㎞:화엄사~천왕봉~중봉~하봉~대원사), 지리산 왕복종주(55㎞:성삼재~천왕봉~성삼재), 태극종주(80㎞:어천마을~웅석봉~천왕봉~성삼재~바래봉~인월)은 물론 영남알프스(27.3㎞:배내고개~능동산~천황산~재약산~영축산~신불산~간월산~배내고개), 보만식계(57.1㎞:보문산~만인산~식장산~계족산), 공룡능선종주(한계령~대청봉~마등령~설악동) 등 전국 곳곳의 산행을 계획하고 있다.

또 지리산 칠암산 순례(도솔암~영원사~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약수암~실상), 천성장마(26.7㎞:천태산~대성산~장용산~마성산), 수도~가야산(26㎞:수도암~수도산~단지봉~목통령~두리봉~가야산) 등의 산행도 도전 목표다.

대전의 둘레산 격인 보만식계 산행은 이미 여러차례 실시했으며, 대전시 경계길(13구간, 160㎞)도 우선 도전할 과제다. 김 이사는 산행시 느낀 문제점과 제언도 잊지 않았다. 산행시 쓰레기 투기는 절대 금지해야 하고, 정상에 올랐다고 메아리를 외치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소리 높여 고함을 지르면 산 짐승들이 놀라기 때문이란다. 또 산행 인구가 많아지면서 계단 설치가 곳곳에서 이뤄지고, 과도한 시설물 및 등산길 정비 탓에 자칫 산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 이사는 “우리나라는 1대간(백두대간), 1정간(장백정간), 13정맥(남쪽 9정맥ㆍ북쪽 4정맥)으로 산줄기를 따라 분수령, 마을이 형성되면서 문화와 풍속, 사투리 등 사는 모습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며 “산은 오르면 오를수록 신비하고, 깨닫는 교훈이 많아 체력에 뒷받침되는 한 계속해서 산과 호흡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담=이승규 행정자치부장(부국장)·정리=이영록 기자 idolnamba2002@

●김기원 대전도시철도공사 기술이사는…

청양이 고향이며 홍성고를 졸업하고, 1976년 9월 공직에 발을 디뎠다. 시와 자치구의 여러 부서를 두루 거치면서 업무 능력을 평가 받았다. 바쁜 공직생활에도 1994년 충남대 행정대학원을 나왔으며 2003년부터 시 자치행정과 자원봉사담당, 노인장애인복지과 노인복지담당, 문화예술과 문화재담당, 복지정책과 사회서비스혁신담당 및 복지기획담당, 대전테크노파크 협력과, 자치행정국 시민협력과장을 지낸 뒤 2012년 7월 시 공보관으로 부임해 1년 6개월간 최장수 공보관을 지냈다. 국무총리 표창 2회(1998년, 2004년)와 대통령표창(2007년)을 수상했으며 2013년 12월 말 부이사관으로 명예퇴직한 뒤 대전도시공사 기술이사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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