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환 연세남인환피부과 원장 |
왜 우리는 운동경기에 열광할까? 일부 사회학자들은 스포츠가 원시수렵시대의 공격성을 순치시킨 생존게임의 변형이기 때문에 우리 본능속에 숨어있던 공격성을 합법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서 우리가 스포츠 경기에 열광하게 된다고 한다.
과거 로마시대 검투사들의 삶과 죽음의 경기와는 다르게, 요즘 스포츠는 엄격한 룰에 의하여 규제받는 매우 평등한 경기방식을 갖고 있다.
생존게임 같지 않아도, 그럼에도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잠재된 공격성의 해소보다는 경기를 지탱해 주는 경기방식의 사회적 공정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경기장 밖 세상 사정은 어떤가? 불행하게도 나와 우리 모두를 균형 잡아 줄 사회적 룰이 제대로 없으며, 우리가 서로 상대에게 들이대는 기준 잣대가 너무 다른 것을 자주 본다. 쉬운 예로 내가 하면 로맨스이지만 남이 하면 무조건 지탄 받을 불륜이라고 정의해 버린다.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행위에는 관대하고 남의 행위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고 훨씬 더 엄격한 잣대로 가름하는 것이 사회적 본능이라고 한다. 그것이 자신의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그렇게 진화된 무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공정하지 못한 기준 잣대가 집단화되면 잘못된 요상한 결과를 갖고 온다. 이번 월드컵에서 세계 랭킹 54위인 우리나라 축구 현실을 무시하고 8강에 당연히 오를 것이라는 냉철하지 못한 과도한 희망은 현실에 부딪혀 물거품이 되었고, 2002년 월드컵을 경험했던 국민에게 더 큰 절망감을 가져다 주었고, 때문에 남은 월드컵 축구경기를 애써 외면하고, 정말 재미난 수준높은 경기를 챙겨 볼 생각조차 않게 되었다.
우리는 무게, 길이, 부피, 시간등에 대한 기본단위를 엄격하게 정해놓았다. 이를 우리 삶에 기준치로 삼아 사회를 공정하게 만든다. 이 기준치가 없었거나 잘못되었다면 지금 같은 우리 인류의 문명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도량형과 같은 기준치는 갖고 있어도 모든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윤리적, 도덕적 기준치를 정해서 가질 수가 없다. 과거의 윤리규범이던 삼강오륜같은 도덕룰 조차 이제는 무너져 없어지고, 그때마다 달라지는 상황 윤리만 판을 치는 도덕적 기준치가 없는 세상이 되어 있다.
소위 사회적, 정치적 지도층들이 자신의 과거 범죄에서 정치적으로 복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에겐 관대하게, 남에게는 엄격한 윤리적 잣대로 들이대는 모습들을 총리인선 과정에서 너무 많이 보면서 멘붕상태에 빠지는 건 나만의 경우일까?
자신의 과거 행적은 무조건 덮고 아니라고 발뺌 하면서 상대의 작은 문제(실제 잘못이라기보다 비판하는 자신의 잣대로 잘못 가름한 것이 틀림없다)를 큰 목소리(언론의 도움까지 받아)와 갑을관계의 지위를 내세워 무조건 비판한다. 그것도 모자라 악의적인 스토리까지 만들어 진실인 양 떠들고 인격살인마저 해대는 일들을 너무 흔히 보았다.
이런 행위는 국민의 도덕적 기준을 무시하는 것이고, 국민의 건강한 비판정신을 병들게 만들어 우리 사회를 반목과 질시속에 빠뜨리게 한다. 이를 보면서 우리 사회에 공유될 공정한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 잣대를 하루 빨리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도덕 윤리의 기본 잣대도 시대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은 사회윤리적 기본 잣대를 지키지 않으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 또 자신의 이해관계에 매달린 전략적인 비판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현재의 사회지도층은 이젠 정말 아니다.
누구에게나 공정한, 검증하는 자나 검증 받는 자나 똑같이 적용받는 윤리적 잣대가 있어야겠다. 예를 들어 사기행위나 살인, 강도, 또는 수뢰혐의와 같이 자기 판단에 따른 주관적 범죄행위를 했던 사람은 최소한 국민선출직이나 고위 국가공무원에는 나서지 못하게 법률로 정하면 어떨까(그들이 자신을 옭맬 이런 법을 만들지 않겠지만).
그러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최소한의 윤리적 기본 틀이 될 것이고, 해당자에겐 자신을 미리 가름하는 잣대가 되지 않을까.
제대로 능력을 갖추고 공정한 경기 룰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좋은 결과를 얻는 스포츠의 기본 정신을 우리 모두 경기장 밖에서도 잊지 말아야겠다. 이것이 우리나라 축구팀이 철수해버린 열기 빠진 월드컵 경기에 아직도 열광하며 관전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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