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한남대 총장 |
떠나는 분들은 미련 없이 떠나고, 보내드리는 사람들은 축복하고 감사하며 환송해드리자. 유행가 가사 중에 뜻 깊은 두 구절을 생각해본다.
'있을 때 잘해'와 '때는 늦으리'라는 말이다. '그때 좀 더 잘 할 걸', '그때 좀 더 참을 걸', '그때 좀 더 베풀 걸'이란 자기만의 소감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퇴임하는 사람의 속마음은 매우 복합적이라 본인 이외에는 그 심경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시원섭섭'이란 말이 암시하듯이 대과없이 임기를 마친 것에 감사하지만, 동시에 하던 일과 하고 싶었던 일이 미완성 내지 진행형일 때 느끼는 아쉬움과 섭섭함과 염려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퇴임자에겐 그냥 '축하한다'고 인사하기가 어려워 '석별의 정'이란 말로 에둘러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발음은 똑같이 정년이지만 일본은 '定年(정년)', 한국은 '停年(정년)'으로 쓴다. 내 생각은 일본이 쓰는 '定年(정년)'이 맞다고 본다.
영어로 'retirement'는 타이어를 새로 바꿔 끼운다(re-tire)고해 이제부터 새로운 미래를 향해 출발하려고 신발 끈을 고쳐 매는 것이라는 덕담으로 격려하기도 한다.
퇴임을 맞은 분들에게 감사와 위로를 드리면서 옛이야기 몇 마디를 나누고 싶다. 퇴임하는 본인에게는 고은선생이 쓴 시 '그 꽃'을 올려드린다.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 보지 못한 / 그 꽃”. 퇴임자를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태주 선생이 쓴 시 '풀꽃'을 소개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동시에 옛사람들의 글도 몇 편 찾아보자. 채근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
“대숲에 바람이 불어오면 사각사각 소리가 나지만, 바람이 지나고 나면 아무 소리도 남지 않는다(風來疎竹 風過而竹 不留聲) / 기러기 떼가 차가운 호수 위로 날아가면 그림자가 생기지만, 일단 지나가고 나면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다(雁度寒潭 雁去而潭不留影) / 이처럼 군자도 일을 맡았을 땐 마음 써서 충성하지만(故 君子 事來而心始現) / 일이 끝나고 나면 마음을 비우고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事去而心隨空)”. 쉽지 않겠지만 의미 있는 말이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가지고 있으면서 더 채우려 함은 그침만 못하다. 대들보 받침을 어림잡아 놓으면 오래가지 못한다. 금과 옥이 집안에 가득차면 지켜낼 도리가 없다. 넉넉하고 귀하다 해도 교만하면 자기에게 허물이 남는다. 공을 이루었으면 본인은 홀연히 물러나는 것. 이것이 하늘의 도리”라 한다.
취임이 있으면 퇴임도 있기 마련이다. 일찍이 불가에서 살아있는 모든 것은 죽을 때가 있고, 만난 사람들은 언젠가 헤어지게 되어 있다고 한 것도 만고불변의 진실이다. 그러니 새로 취임하는 분들도 4년이나 8년 혹은 12년이 지나면 퇴임하는 날이 올 것이다.
내려올 때를 생각하며 올라가는 이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마치 죽을 날을 생각하며 오늘을 사는 사람이 올바르게 살 수 있듯이….
돈을 많이 벌었거나 명예를 두텁게 닦았거나 공부를 많이 했거나 지위가 높게 올라갔다는 것이 곧 인생에서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직 원하는 곳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계속 걸어가는 일을 포기하지 말라. 인생에서 속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자기 분수에 맞는 속도로 가면 된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가자. 항상 현재진행형으로 우리 모두 자기의 진도를 관리해나가자.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계서 훈계로써 인도하며 도와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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