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어떤 부부가 수혈이 필요한 제 아이의 수술을 거부하는 탓에 아이가 그만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이른바 자신들이 믿는 종교의 교리를 앞세웠기 때문이다. 종교란 생명 존중을 전제로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는 것임에도 이 별난 맹신에 따른 미련한 짓거리들이 이따금씩 벌어진다.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는 극단적인 사례다.
자동차 과속에 대한 함정단속은 지탄의 대상이다. 항상 제한속도를 지킨다면 아무리 몰래 숨어서 단속한들 걸리겠느냐는 상식적인 지적은 왜 대답 없는 메아리로만 남을까. 과속 단속의 목적이 적발 자체가 아닌, 과속으로 인한 교통사고의 억제에 있기 때문이다. 함정단속은 오직 적발만을 위한 것이지 않은가. 교통사고 억제라는 목적과 과속 단속이라는 수단이 서로 전도된 전형적인 보기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 중계방송을 통해 전 축구국가대표 이영표가 주목을 받고 있다. 큰 무대에서의 경험과 냉정한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 절묘한 균형감, 경기의 맥을 읽는 깊은 안목과 분석력, 그리고 정연한 말솜씨가 그의 자랑이다. 선수 시절 어떤 인터뷰에서 한 그의 말은 우리 삶의 목적이 수단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물음에 대한 행복한 답을 준다.
“…목표가 재미가 아닌 성공이라면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룬 다음에는 목표의식을 잃고 방황하기도 한다. 즐거움이란 끝이 없어 좋은 자극제가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축구의 재미는 꼭 국가대표 팀이나 유명 프로 팀에서 찾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은퇴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 대강 이런 정도로 기억한다.
그가 축구를 하는 목적은 즐거움이다. 국가대표 팀에 발탁되거나 세계적인 프로 팀에 입단하는 이른바 성공이라는 것도 결국 수단일진대, 이를 목적인 양 잘못 생각하면 방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축구선수로서의 즐거움이 한갓 이론이나 이상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삶에 대한 한 젊은 범인(凡人)의 자세는 한 번쯤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공공기관은 매년 경영평가를 받는다. 자율ㆍ책임경영체제 확립, 경영효율성 향상, 공공서비스 증진을 유도하기 위해 1984년 시작된 제도이다. 그러나 지난 6월 18일 발표된 2013년 평가 결과를 두고는 여러 말들이 오간다. '정부가 정규직 증원을 허용해 주지 않는 가운데 대폭 늘어난 업무량에 맞춰 어쩔 수 없이 늘린 비정규직 문제를 지적 받았다'는 등의 이유로 행정소송과 감사원 감사청구를 준비한다는 기관도 있다.
며칠 전 '고무줄 공공기관 경영평가'라는 제목의 신문 칼럼을 읽었다. 글쓴이는 바로 경영평가 취재기자인데, '신뢰를 잃은 평가는 공공기관 개혁의 도구가 아닌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공공기관 정상화를 위해서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가 먼저 정상화돼야 한다'고 글을 맺는다. 일부 평가 담당 교수들이 정부 방침에 반발하여 사퇴했다며, 이것이 정부 개입의 증거라는 주장도 있다.
엄청난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경영평가는 특히 45%나 차지하는 비계량 정성평가 방식을 둘러싼 잡음 때문에, 또 공공기관 순치(順治) 의도 등 그 숨겨진 정치성 때문에 본래 목적이 훼손되기 일쑤다. 아무리 수단이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지만 그 수단이 합목적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어떤 경우든 선의의 목적에는 다들 동의한다. 그렇다고 그 선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언제나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이러한 불합리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이 그 목적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겠는가. 경영평가는 꼭 필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수단이다. 불의(不義)한 수단에 너무 많은 힘이 실리면 그 수단이 바로 목적이 된다. 경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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