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복 극작가, 꿈실현 아카데미 대표 |
'변신'은 실존주의 소설이고 우장춘 이야기는 우리의 역사다. 그러나 역사든 소설이든 우리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너무 크다. 프란츠 카프카의 중편소설 '변신'에서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Gregor Samsa)는 벌레로 변신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벌레로 변해버린 상황을 죽기직전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가족들의 멸시와 따돌림, 아버지가 집어던진 사과에 맞아 몸에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고통, 그리고 사랑의 굶주림 속에 가슴 깊이 밀려드는 외로움과 절망의 늪을 헤매다가 서서히 죽어간다.
우범선(禹範善)은 경복궁에 잠입해서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살인귀들에게 도망갈 길을 열어준 조선군 훈련대 제2 대대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던 자다. 을미사변 직후 일본으로 망명해 일본인 여자와 결혼한 후 우장춘(禹長春)을 낳고 1903년 애국열사 고영근에게 암살당했다. 당시 우장춘은 여섯 살. 일본에서 태어나고 일본에서 성장했지만 조선의 혈통을 가진 그가 일본의 종묘학자가 됐다는 건 운명의 장난. 우장춘은 우리 정부의 간곡한 권유로 1950년 어머니와 처자식을 모두 일본에 남겨둔 채 조국으로의 변심(變心)을 결심한다. 그의 한국에서의 삶은 국민들의 지지와 반목으로 이루어졌다.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그는 자랑스러운 우리민족의 농학자였고, 발목만 잡는 소수의 무리들에겐 역적의 아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귀국해서도 일본말을 사용하며 농림부 장관직 제의도 거절하고, 이데올로기와 무관하게 묵묵히 자기 일에만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죽기 직전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받은 후에야 “조국이 나를 인정했다”며 처음으로 대한민국이 자신의 조국임을 인정했다.
6ㆍ4지방 선거를 치르면서 중앙 집행부의 코드에 맞는 공천으로 인해 유능한 후보들이 색깔이 다른 옷에 번호판을 바꿔달고 변신(變身)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쪽에선 옷을 벗기고, 다른 한 쪽에서 옷을 입혀 출발선에 세웠던 것이다. 우리는 운동선수들이 연봉에 의해 옷을 바꿔 입는 것을 종종보아 왔다. 그러나 그것은 자의에 의해 그랬던 것이고 운동선수이기에 관용의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치판은 다르다. 옷을 갈아입히고 번호판을 바꾸어서 출발선에 세우려면 그 선수의 능력을 보아야하고 국민들의 지지도를 보아야 한다. 그런데 국민의 마음이야 어디에 있든 칼자루를 쥔 중앙집행부는 그들만의 잣대를 가지고 자신들의 측근들이나 또는 신세진 인물에게 공천을 해주었던 것이다.
타고 온 뗏목을 버릴 줄 아는 정치가가 진정한 정치가인 것이다. 그동안 신세 좀 졌다고 해서 대다수의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인물을 출발선에 세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공천의 잣대는 그 지방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번 지방선거는 일곱 명을 동시에 뽑는 복잡한 선거였다. 아무리 지혜가 많은 제갈공명도 누구를 뽑아야할지 헷갈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명도가 높은 후보들의 옷을 벗겼으니 국민들은 더욱 헷갈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능력보다는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공천해야 한다는 관행을 깨야 한다. 콜럼버스가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며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왔을 때 그를 시기하는 어느 귀족에게 달걀 한쪽을 깨서 세운 일은 그동안의 관행을 깨 버렸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관행을 깨지 못하면 새로운 발전이 없고 선거에서도 백전백패 할 수밖에 없다.
또한, 출발선에 섰던 후보들도 옷을 바꿔 입고 번호판을 바꿔 달았다고 해서 변신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레고르는 변신한 후 가족들에게 버림받았고, 두 개의 조국에서 갈등하던 우장춘은 혈통적 조국을 위해 애국으로의 변심(變心)을 했기에 영원히 행복하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던 것이다. 애국으로의 변심! 이는 우리 5천만 민족의 가장 확실한 지향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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