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를 하루 앞둔 24일 현충원을 찾은 한 유족이 묘비를 쓰다듬고 있다. |
그런데 예년과 비교해도 올해는 유난히 '6·25'가 자취를 감췄다. 해마다 이맘때쯤 곳곳에서 추모분위기가 넘쳤고, 관련 행사도 많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말 그대로, 잊혀진 6·25다. 4월부터 이어진 세월호 참사와 동부전선 GOP 총기난사 사태, 2014 브라질월드컵 등 굵직한 사안들 속에 파묻혀 관심 밖으로 사라진 안타까운 아픈 기억이 돼버렸다.
무관심 속에서 6·25 한국전쟁 64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았다. 현충원 정문 맞은 편에 걸린 '나라 위한 값진 희생 피어나는 호국정신' 등 추모 현수막이 참배객들을 먼저 맞이했다. 국립현충원 길목에는 이른 아침부터 국화꽃 등을 파는 노점상으로 붐볐고, 몇몇 추모객들 사이로 국화꽃 향기만 가득했다. 국화꽃을 내놓으라는 엄마의 말에 두 손으로 꽃을 꼭 잡은 채, 한 아이는 “내가 할아버지에게 직접 주겠다”고 떼쓰기도 했다.
국립현충원 안쪽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애국선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모시와 음악이 흘러나왔다. 추모객들은 순국선열들이 잠든 묘지를 찾아 제를 올리며 숭고한 뜻을 기리고 넋을 위로했다.
가족, 친지와 함께 묘지를 찾아 돗자리를 펴고 음식을 나눠 먹는 풍경 사이로 홀로 묘비 앞에서 묵념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남편의 묘비 앞에 과자와 명태 등 먹을거리를 차려놓은 김금레(80)씨는 “집이 목포다 보니 자주 찾아오고 싶어도 너무 먼데다가, 나도 나이가 차면서 영감님을 보러 자주 못 오고 있다”고 말을 흐렸다. 술잔을 따른 뒤 한동안 말없이 묘비만을 쳐다보던 김씨는 “우연찮게 오늘이 내 생일이오. 영감님 하늘에서라도 꼭 축하해 주시오”라며 오열했다.
3대가 말끔히 정장을 차려입고 묘비 앞에서 정중히 제를 올리는 모습도 보였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고 있던 제사는 선열의 딸인 이씨가 참고 있던 눈물을 터뜨리며 곧 울음바다로 변했다.
엄마와 함께 할아버지의 묘역을 찾은 최씨는 “전쟁 당시 육군이었던 할아버지는 용맹한 역전의 용사라고 들었다”면서 “할아버지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매년 찾아와 인사를 드리고 있다”고 말한 뒤 묘비를 닦고 또 닦았다.
목포에서 올라왔다는 한 할머니는 “혼자 대전까지 오기가 힘이 부쳤는데 보훈청이 버스를 대절해줘서 남편을 보러 올 수 있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추모객들로 붐비는 묘역과는 달리 한적한 곳도 있다. 무명용사들의 묘역이다. 다른 선열들과 같이 나라를 수호하다 순국했지만 단지 이름을 남기지 않고 떠나 전사한 날짜와 장소만이 묘비에 새겨져 있다. 쓸쓸한 무명용사 묘역을 달래는 이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자원봉사를 위해 국립현충원을 처음 찾았다는 박정은(여·58) 씨는 “추모객들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너무 슬프고 눈물이 나오는데 유족들은 어떤 마음이겠냐”면서 “나라를 위해 순국하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말했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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