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호]대전시청사, 39년 공직인생의 자부심이죠

[윤기호]대전시청사, 39년 공직인생의 자부심이죠

증조부 윤영식부터 아들, 며느리까지 5대째 공직계보… 이달 30일 운명같은 공직 떠나 착공부터 준공까지 건립소장 맡아… 월드컵경기장ㆍ한밭도서관도 땀으로 지은 곳

  • 승인 2014-06-17 14:10
  • 신문게재 2014-06-18 9면
  • 대담=이승규 행정자치부장(부국장)ㆍ정리=이영록대담=이승규 행정자치부장(부국장)ㆍ정리=이영록
[중도초대석]160년 5代 공직계보 윤기호 대전시건설관리본부장

공무원(公務員), 사전적 의미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공무를 담당하고 집행하는 사람을 뜻한다. 세부적으로 국가직, 지방직, 행정직, 기술직, 경찰, 소방, 군인 등 다양하게 나뉜다. 공무원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그다지 많은 대우를 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일반 사기업에 비해 급여가 많지 않을 뿐더러 소위 튈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IMF 이후 신랑ㆍ신부감 1순위로 꼽힐 정도로 선호하는 직종이 됐다. 사회가 불안정한 만큼 안정적인 직장, 급여가 보장되는 공무원이 인기를 끄는 것이다. 최근에도 공무원시험 경쟁률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대학 입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공무원 고시인 셈이다.

오는 30일 명예퇴직을 앞둔 윤기호(60ㆍ사진) 대전시건설관리본부장은 증조부 때부터 조부와 부친, 아들, 며느리까지 5대를 이어온 유례없는 공무원 가문이다.

윤 본부장은 새로운 둔산시대를 연 대전시청사의 착공부터 준공까지를 비롯해 대한민국 건축대상에 빛나는 한밭도서관 준공 등 건축직 공무원을 천직으로 알고 39년을 보냈다. 이제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새로운 제2의 인생 설계를 앞둔 윤 본부장을 만나 5대째 이어온 공무원 가문과 공직 인생의 소회 등을 들어봤다.<편집자 주>


▲5代를 이어온 뼛속까지 공무원, 아직도 진행 중=윤기호 본부장의 집안은 증조부 때부터 공직생활을 천직으로 여겼다.

가업처럼 대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선친들의 투철한 사명감과 청렴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다.

'청렴하게 살아라', '공익(公益)과 사익(私益) 중 공익이 우선이다'는 선친들의 일관된 가르침에 따라 한 눈 한번 팔지 않고 지금의 자리에 선 것이다.

윤 본부장은 “부친께서 말씀하시길 '소금 먹은 놈이 물 켠다'는 말처럼 공무원은 항상 청렴하고 깨끗해야 한다'고 했다”며 “그만큼 주변의 유혹과 그릇된 일을 과감히 떨쳐야 나라의 녹을 먹는 올바르고 참된 공무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본부장의 공직계보는 1대로 일컫는 증조부인 윤영식 선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영식 선생은 구한말, 고종 재위 시절에 정3품 통정대부를 지냈다. 2대인 조부 윤양채 선생은 1912년(영치 45년) 경성고등보통학교 교육속성과를 나와 청주 남일보통학교 교사로 발령받아 당시 충북 제천군의 동명, 봉양, 청풍국민학교장을 역임했다. 1958년 8월 46년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1962년 민선 교육위원으로 당선돼 1965년까지 교육발전에 이바지했다. 3대인 부친 윤방훈 선생은 1940년 체신 이원 양성소를 졸업하고, 그 해 제천우체국에 발령받아 1955년 사무관, 1970년 서기관 승진 등 1985년 6월 46년간의 체신공무원을 마무리하기까지 포항, 청주, 충주, 대전우체국장, 전신전화국장 등을 역임했다.

윤 본부장은 1976년 8월 내무부 공무원으로 발령받아 대전시건설관리본부장을 역임하기까지 39년간 공직에 몸담았다. 1979년과 2009년 전국체전 시설업무, 1993 대전엑스포 시설업무, 둔산동 대전시청사 착공 및 준공, 1999년 한밭도서관 준공 등 대전의 굵직한 건설역사와 궤를 함께 하고 있다.

윤 본부장은 “제 형제가 3남(윤 본부장은 차남) 3녀인데 부친께서 '아들 중 한 명은 공무원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던 적이 있는데 당시 누님께서 교편을 잡고 계셔서 나는 내심 사업을 구상했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부친의 가르침을 받아서인지 어느 순간 공무원의 길로 가고 있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한 때 건설회사 입사도 생각했지만 서울에서 근무하는 형님 대신 내가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상황이어서 전국을 옮겨 다니는 사기업보다 주거가 안정적인 공무원이 나을 수 있다는 판단에 발을 디딘 것”이라며 “1979년 11월 결혼 당시 아내는 교사였지만 내 뒷바라지와 부모님 봉양을 위해 과감히 교편을 내려놔 지금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뿐이다”고 부인에 대한 애틋함을 전했다.

또 “1976년 8월 공무원 임용 뒤 두달만에 군에 입대했고, 1979년 제대 후 건재사업을 하려 했지만 부친이 극구 만류해 공직에 복귀, 지금까지 이어왔다”며 “부친의 뜻이 앞을 내다보는 올바른 결정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윤 본부장 집안의 공직계보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윤 본부장까지 4대, 160여년을 내려왔지만 아들(유성구청 건축직), 며느리(대전시상수도사업본부)까지 공무원이어서 5대, 200년은 확보됐고, 그 이후도 공직계보가 이어질 수 있을 지 벌써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둔산동 시대를 연 대전시청사 건립의 주역=건축직 공무원으로 숱한 경험을 축적한 윤 본부장의 가장 큰 자부심은 현재의 서구 둔산동 대전시청사 건립이다.

신청사 건립소장을 맡아 공사현장에 사무실을 마련해 놓고 먹고 자다시피 일에 몰두했다. 울타리가 없는 시민과 같이 쓰는 공간, 열린 청사, 시민 청사를 모토로 1995년 3월3일 착공해 1999년 11월 13일 준공한 신청사는 윤 본부장의 온갖 노력과 땀이 스며 있다. 윤 본부장은 1995년 3월 신청사 착공과 1999년 11월 신청사 준공까지 건립소장을 지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호화롭고,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전국 지자체의 청사를 조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윤 본부장은 “당시 30년 후인 2020년을 내다보고 매년 공무원이 3% 증가할 것으로 예상해 건축한 것”이라며 “당시 부지 매입비와 건축비 등 1416억원이 소요됐지만 현재 시세라면 적어도 7000억원 이상 들여야 지금의 청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사업인 만큼 정확한 예측과 검증을 통해 추진한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윤 본부장은 2002년 월드컵 개최에 맞춰 완공된 대전월드컵경기장에도 손때가 묻어 있고, 1999년 12월에는 한밭도서관 건립을 감독한 결과, 대한민국 건축대상 수상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윤 본부장은 “공무원 초창기 시절 우리나라는 국가 급성장시기에 맞춰 공사의 품질보다 빨리빨리 문화에 따른 결과물에만 치중했었다”며 “당시는 기술력도 떨어지고, 일자리 창출이 우선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는 기술력이 담보되고, 여건이 갖춰진 만큼 안전에 대한 철저한 점검을 통한 건축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시청사에 매설된 '타임캡슐'의 비밀=대전시청사 남쪽광장에는 '타임캡슐'이 매설돼 있다. 우리나라 첫 위성인 우리별 1호 모양을 본 떠 만든 타임캡슐은 당시 홍선기 시장이 제안한 것으로 길이 12m, 폭 6m의 구조물로 대전시청사가 준공된 1999년 11월13일 봉인, 같은 해 12월 31일 매설식을 갖고, 2114년 3월1일 개봉될 예정이다. 타임캡슐에는 400개 품목, 1334점의 당시 수장품을 지하 10m 깊이에 매설했다.

대전면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인 2114년 3월 1일 후손들에 의해 선보이게 된다. 타임캡슐 제작과 관련한 뒷얘기는 윤 본부장의 기획력(?)을 돋보이게 한다. 당시 타임캡슐 제작과 관련해 아무런 정보나 기술력이 없었던 만큼 이미 제작된 공법 및 도면 확보가 우선이었다. 윤 본부장은 우여곡절 끝에 A기업이 B도시에 매설한 타임캡슐 도면과 공법 등 자료를 확보해 성공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윤 본부장은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일이었지만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설계=윤 본부장은 지난달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다. 일에 몰두하다 보니 수술이 미뤄졌고, 그나마 명예퇴직을 앞두고 시간을 쪼개 수술대에 오른 것이다. 윤 본부장은 “2개중 1개의 갑상선을 절제해 방사선 치료도 받지 않는다”며 “달걀이나 고기 등 고단백 식사를 챙겨 먹고, 5년간 칼슘제를 복용해야 하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윤 본부장은 퇴직 이후 계획에 대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시간을 갖고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퇴직을 앞두고 몇몇 사기업에서 '콜'이 있었지만 최근 공직에 근무하다 사기업이나 공기업 등으로 재취업하는 소위 '관피아'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만큼 올바른 결정을 하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윤 본부장은 “공직에서 체득한 경험과 능력을 살릴 경우 긍정적 측면에서 활용 가능한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공무원은 최고의 전문가 집단인 만큼 후배들도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고 생활해 달라”고 당부했다.

대담=이승규 행정자치부장(부국장)ㆍ정리=이영록ㆍ사진=이성희 기자

●윤기호 본부장은…
1955년 1월 대전시 중구 대흥동에서 태어나 1976년 8월 내무부 공무원으로 발령, 1979년과 2009년 대전에서 개최된 전국체전의 시설업무를 완벽하게 준비했다. 1990년 2월에는 대전시건설관리본부 개청 준비단으로 발령받아 1993년 개최된 대전엑스포의 시설업무를 맡아 성공 개최의 기초를 다졌다. 1995년 3월 3일 착공해 1999년 11월 13일 준공한 둔산동 대전시청사 역시 윤 본부장이 신청사 건립소장으로 완벽 시공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1999년 12월 준공한 한밭도서관은 대한민국 건축대상을 받는 영광도 안았다. 1996년 사무관 승진 이후 2007년에 서기관으로 승진해 대덕구 도시국장을 지냈고, 대전시건설관리본부 시설부장, 송촌정수사업소장 등을 거쳤다. 도시철도기획단장 시절에는 도시철도 2호선 예비타당성조사 통과와 충청권광역철도망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사업 선정 등 성과를 일궈냈다. 이후 지난 1월에는 대전시건설관리본부장으로 승진한 뒤 6개월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조직문화 개선을 추진하는 등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으며 오는 30일 39년간의 공직생활 마감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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