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원]디지털 시대의 공인(公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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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국원]디지털 시대의 공인(公人)

[중도마당]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

  • 승인 2014-06-16 13:37
  • 신문게재 2014-06-17 16면
  • 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
▲ 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
▲ 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
우리의 삶은 선악(善惡), 명암(明暗), 미추(美醜), 흑백(黑白), 음양(陰陽), 남녀노소(男女少), 빈부귀천(貧富貴賤) 등의 두 가지 상반되는 가치로 구성되어 있다. 두 가지 대립되는 가치 중에서 과연 어떤 것이 강조되는지에 따라서 각자 인생의 경험과 품격이 다양하게 형성되어 나간다. 인간생활뿐만 아니라 자연세계와 우주에서도 이러한 두 가지 가치의 대립과 조화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원론(二元論)은 언제나 인기있는 학설이었던 것 같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만큼 직접적으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중요한 가치의 구분이 곧 공(公)과 사(私)이다. 공적인 것(the public)과 사적인 것(the private)의 구분은 사회와 국가의 근본을 구성하는 중요한 가치이다. 개인적인 욕심이나 의지가 공공적인 신념과 염원을 훼손하게 되면 그 사회는 오염되고 병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적인 것들(res publica)의 집합체인 공화국(republic)의 건강을 위해서 사적인 가치를 억제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요구되었다. 선공후사(先公後私), 멸사봉공(滅私奉公) 등의 익숙한 구호는 공적인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사적 이익의 희생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고귀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치를 만족시키기 위해 특히 공적인 업무를 맡는 공인(公人)에게는 엄격한 기준이 요구되었다. 공공 문서를 볼 때는 정부에서 지급한 초를 키고, 개인적인 독서를 할 때는 자신이 구입한 초를 밝히고 읽어야 한다는 이른바 관촉사촉(官燭私燭) 논쟁은 동서양을 통틀어 공인의 자격에 관한 가장 준엄한 기준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생활 스타일이 급격하게 변해가는 현대에서 전통적인 가치기준을 고수하려면 많은 어려움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가령 관촉사촉의 기준을 준수하려고 전기계량기를 따로따로 두 개 설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공공예산으로 구매하면서 생긴 포인트를 개인이름으로 적립한다면 당연히 관촉사촉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라 피해야 마땅하다.

현대사회에서 공인(公人)에게 요구되는 기준을 적용하는데 새로운 변수가 되는 것이 바로 디지털 문화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아날로그 문화와 달리 디지털 시대는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이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공개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디지털 문화는 전통적인 공사(公私)의 이분법 가치기준에 대한 심각한 재고를 요청하고 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기존의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을 없앨 뿐 아니라 혼동을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테크놀로지는 온갖 개인적인 취향을 만족시키고 증폭시키는 상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고 SNS를 통해 전세계 사람들과 수다를 떨 수 있는 현대에서는 더 이상 이름없는 필부(匹夫, 匹婦)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의 정보가 모두에게 공개되는 디지털 사회에서는 사실 우리 모두가 이미 공인(公人)인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느 누구라도 대중의 관심을 받거나 혹은 공공의 적이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이른바 '신상털기'라는 디지털 수색작업은 고대 그리스에서 조개껍질(貝殼)로 추방할 사람을 투표하던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잔인하다. 한 번 잘못 퍼진 소문이 아무 여과도 없이 인터넷을 타고 전국과 전세계로 순식간에 확장되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치명적이다. 현대사회에서는 누구나 5분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유명한 말은 거꾸로 어느 누구라도 5일간 국민이 가장 싫어하는 악인으로 만들어 질수도 있다는 말로 굴절되어 돌아온다. 사적인 장소에서 했던 지극히 개인적인 발언일지라도 일단 저장되고 유포되기 시작하면 공적 기준을 적용받게 된다. 개인적 요구를 극대화하기 위해 개발된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어느 틈에 개인의 운신을 제약하는 족쇄가 되어가고 있다. 개인적인 정보가 공개되고 사적인 공간이 모두 노출되고 마는 디지털 시대에서 공사(公私)의 전통적 구분과 잣대는 혼란을 일으킨다. 요즘 국정을 책임질 총리와 장관 등 공인을 선발하는 일이 힘든 이면에는 바로 디지털 문화의 새로운 공사(公私) 개념이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는 이유가 숨어있다고 생각되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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