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온 힘을 다해 시로써 자신을 증명하는 숨소리를 내왔었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자기 증명을 넘어 타인의 통증 곁에까지 당도하려 시도한다. 자신을 둘러싼 고독의 장벽을 허무는 것이 비록 불가능할지라도 박진성은 세상을 떠도는 고통을 들으려 끊임없이 애쓰고 있다.
끝내 슬픔을 달래지 못하고 애도 역시 실패에 그칠 것임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밤을 견디며 믿을 수 없는 순간에조차 믿음과 사랑을 확신해낸 55편의 시가, 엷고 푸르게 빛나는 시집 '식물의 밤'으로 묶였다. 박 시인은 지난 시집들에서 몸에 체현되는 절절한 고통과의 사투를 그대로 드러냈다. '아픔'과 '고통'은 박 시인의 시에서 추상적인 관념에 그치지 않고 만져질 듯 생생했다. 병은 시의 소재가 아니라 시인의 목숨과 같았다. '식물에 밤'에서도 박 시인은 여전히 앓고 있다.
다만 “광기는 이제 지친 것 같다”('처음 우는 아이는' 중에서)는 말처럼 병증으로 생을 증명하는 일 너머를 시도한다.
아무리 고통의 근원을 되짚어 봐도 왜 아파했는지 분명히 알 수는 없었다. 결국은 무력감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인은 최대치의 아픔에 다다랐을 때 문득 멈추어 생각했을 것이다. 박 시인은 그의 어깨에 닿은 이름 모를 슬픔과 고통을 잠시 곁에 두며 귀 기울여 듣고, 냄새 맡고, 쓸어본다.
출판 문학과지성사, 페이지 138쪽, 가격 8000원.
이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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