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각 대전시건축사회 부회장, 건축사사무소 에이앤엘 대표 |
기울어진 아산오피스텔의 뉴스를 보는 순간 최첨단을 살아간다는 이 시대에 상상도 하지 못할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초공사의 단순하지만 치명적인 부실이 수개월간 땀을 흘리며 지어 올린 모든 것을 한순간에 쓰러뜨리는 사진을 보면서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실제적이지만 외면하고 있는 숨은 모습은 아닐까하는 염려의 마음이 가득하다.
아산오피스텔은 설계도면과 다르게 시공되었다고 한다. 약한 지반을 보강하는 기초파일의 개수를 30~40% 줄이고, 매트기초의 두께도 20~30㎝ 얇게 시공했다.
현장 감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지질조사를 통해 지반의 안정성을 확인하고 구조계산을 통해 건물의 구조적 안정성도 확인하고서도 '설마'라는 사탕발림으로 밤새워 그린 설계도면을 무시했다.
주요공정에 공사 전 도면과 맞게 시공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시정지시해야 하는 감리업무를 '하는 척'이라는 나태함의 위장술로 현장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 이런 비극을 낳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이 그 문제의 핵심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있는 안전에 대한 불감증과 역할에 대한 책임의식의 결여도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원칙'과 '역할'이 자본의 논리에 눌려 버리는 이 사회적인 현상들이 비단 이 뿐일까. 얼마 전 모구청에서 발주한 감리용역도 마찬가지이다. 소규모 공사로서 기본적인 건축사감리업무만 수행하면 될 이 용역의 과업지시서에는 일정규모 이상에만 적용해야 하는 상주감리에 해당할 만큼의 무리한 과업량을 나열해 놓았다.
게다가 이 용역의 기초금액은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되어 업무수행이 불가능해 보였다. 해당구청 담당자에게 산출근거를 요구했더니 공공발주사업에 대한 대가기준으로 산출한 금액의 66%로 기초금액을 정했다고 당당히 대답하는 것이다.
추가로 예산이 없어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면서 부담스러우면 입찰하지 않아도 된다는 멘트까지. 국가기관에서 입찰하는 용역들이 대부분 대가기준의 100%로 기초금액을 정하고 낙찰선은 약 87%정도에서 정해지고 있다.
이 역시 예산절감이 가장 큰 이유가 되겠지만 용역을 수행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불만요소가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기초금액 자체를 66%까지 내려야했는지 알 길이 없다.
실제로 낙찰된 금액은 원래 산출되어야 할 금액의 59%선에서 결정됐다. 제대로 산정되지 않은 감리용역비에 과중한 업무량까지 수행해야 되는 이 용역에서 필자는 아산오피스텔의 동일한 현상을 보게 된다.
원칙과 역할에 대한 '경박한' 무시함. 예산이 부족하면 사업량을 조정해 우선순위대로 집행하든지 추경을 통해 예산을 확보한 후 사업을 진행해 제대로 된 용역을 발주하는 원칙에 입각한 행정의 융통성이 필요했다고 본다.
왜 그 담당자는 원칙에 맞는 용역비를 산출하지 못했을까. 예산절감에 대한 상부기관의 지시였을까. 원칙대로 산정하면 감사 대상이 되는 것일까. 자의적인 해석으로 용역비를 줄이지는 않았을 거라 믿고 싶지만 이 용역을 충실하게 이루어내겠다는 책임감은 찾기 힘들다.
결국 그 책임은 최종 업무수행자에게 전가돼 이중삼중으로 압박을 가하게 될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이다. 지키는 자가 소외되기도 하는 시대다. 이 원칙앞에 자유로운 자가 몇이나 될까싶다마는 그래도 지키고자 노력하는 시대라고 느끼고 싶은 마음이다.
자신이 맡은 일, 해야 할 일들을 원칙을 지키며 충실하게 이루어 가는 사회였으면 한다. 모두가 자신의 일이 즐겁고 보람되게 느껴지는 사회였으면 한다.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이루어간다는 연대감이 충만한 그런 사회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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