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주]예술이 우리삶에 주는 영향

  • 오피니언
  • 사외칼럼

[백영주]예술이 우리삶에 주는 영향

[중도춘추]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 승인 2014-06-11 13:59
  • 신문게재 2014-06-12 16면
  •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사실 예술이 가시적으로 무언가를 눈에 띄게 즉시 변화시키는 것은 많지 않다. 좋은 그림이나 책을 보거나 좋은 음악을 듣는다고 해서 밥이 나오는 것도, 떡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영역을 변화시킴으로써 결국은 그 변화가 눈에 보이는 결과로 드러나는 것을 보며, 어쩌면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게 훨씬 중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얼마 전 필자가 운영하는 갤러리에 우리나라에서 이름만 들으면 다 알 만큼 큰 대기업에 다니는 임원이 방문했는데, 이제껏 받아보지 못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내게 털어놓았다. 자신은 보수가 높고 큰 회사에 다닌다는 자부심도 가질 수 있는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그만큼 할 일이 많고 바빠서 삶이 각박할 수밖에 없었던 중에 이렇게 새로운 삶의 모습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동안 일에 쫓겨 미술관은커녕 영화 한 편조차 마음 편히 보러 다닌 적이 없었단다.

비록 넓고 화려한 공간은 아니지만, 200 여개쯤 켠 촛불, 벽면을 채운 미술 작품들, 조용하면서도 깊이 있는 클래식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울려 퍼지는 그 공간은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가진 여러 감각들을 깨우고 또 다른 감동을 불어 넣어주는 최고의 공간이었다. 오십 평생을 마음 놓고 쉴 틈 하나 없이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그건 무엇을 위해서였는지, 그래서 행복했는지를 물어본다면 대답을 주저하게 된다는 그. 미술과 음악, 조명, 여러 장식들이 만들어내는 어딘지 신비로우면서도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간 후, 아주 즐거웠다고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가끔씩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정신적, 심리적 공허감이 있으며, 신체적으로 숨 쉬고 있는 데에는 분명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가슴이 턱 막히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 신체적으로는 전혀 이상이 없어도 정신적으로 힘든 게 몸으로 전이된 듯 실제적인 통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 몸에 있어 정신적인 영역 역시 중요함을 말해주는 건 아닐까.

19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질적 공리주의 사상을 발전시킨 존 스튜어트 밀은 “만족스러운 돼지가 되기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편이 낫고, 만족스러운 바보가 되기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밀은 인간이 동물적인 본성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질적으로 더 높고 고상한 쾌락을 추구한다고 본 것이다. 나는 종종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며, '사람이 이렇게 단순한가' 싶다가도, 복잡한 심경이 들어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을 때에는 '단순하게 설명되지 않는 복잡하고 미묘한 부분 또한 크구나' 하는 것을 깨닫곤 한다. 음식을 먹고 잠을 자면 몸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그것만으로 우리는 '충분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얼마 전 뇌과학 전문가인 미국 MIT 승현준 교수와 가톨릭 신부인 서강대 종교학과 서명원 교수가 만나 인간의 고유 영역인 '영성'에 대해 나눈 대화가 기사로 실렸다. 승 교수가 연구하는 '커넥터믹스(connectomics)'는 1000억 개에 이르는 신경세포의 연결 전체를 일컫는 커넥텀을 3D 영상으로 구현하는 이른바 인간의 '뇌 지도'를 그려내는 시도다. 승 교수는 '커넥터믹스는 읽을 수 없는 글자로 쓰인 방대한 책과 같으며, 글자를 알아볼 수 있게 되면 그 뜻을 풀어야하는데, 인간의 두뇌는 결국 영생이나 죽음의 문제와 같은 신학이나 철학의 영역에 이르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들은 과학으로 찾을 수 없는 인간의 고유 영역인 '영성'에 주목하는 것 같다.

우리 자신조차 들여다 볼 수 없어 알 수 없으며, 그래서 더 어렵고 복잡한 마음과 생각들을 물리적 포만감이 달래주지 않으며, 논리정연한 과학이 이해시켜주지 않는다. 나는 예술이 바로 그런 인간의 정신적인 영역을 드러내고 더 나은 세계를 추구하며, 우리 삶에 자그마한 의미나마 계속해서 채워준다고 믿는다. 예술은 결코 멀리 있지 않으며, 우리가 메마르고 혼란스럽고 가끔은 모든 게 부질없다고 느낄 때마다 '그래도 괜찮다'고 마음을 어루만져줄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5.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1.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2.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3.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4.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5.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