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언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 |
그렇다면 머지않아 각 지역들은 문화도시, 창조도시가 될 수 있을까? '아니오!'다. 우리 생활과 사고방식 등 태생부터 통합적일 수밖에 없는 문화란 어느 한 단위 행정에 의해 분절적으로 다뤄질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문화는 다른 행정과의 연계성이 고려되지 않을 만큼 좁게 구획된 별도 행정에 의해 대부분 그려져 왔다. 이것이 여태껏 우리가 해온 '문화행정'이다. 이렇게 문화행정의 이름으로 행정 안에 문화를 가두어온 방식이 '문화의 행정화'이다.
문화를 행정의 각도에서 보면 '문화의 행정화'이고, 행정을 문화의 각도에서 보면 '행정의 문화화'이다. 1970년대 말 일본에서 처음 등장한 '행정의 문화화'는 행정 스스로가 문화적으로 바뀌어야 함을 뜻한다. 이에 대하여 모리(森啓)와 마쓰시타(松下圭一)는 행정의 이념을 비롯해 그 행동과 표현이 문화적인 관점으로 개선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개별행정을 넘어 종합행정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통문화 중흥, 인프라 건설, 문화예술 활동과 행사 활성화, 문화(예술) 복지와 교육 확대와 같은 정책들이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 맥락적으로 펼쳐져야 함은 당연하다. '문화의 행정화' 단계에 머물러서는 문화도시나 창조도시로의 진전도, 삶의 근본적 질 제고를 통한 정주성의 제고도 쉽지 않다. 충북대 강형기 교수 또한 오래 전부터 특정한 부서가 문화행정을 전담하는 대신 모든 행정 자체가 문화화해야 한다는 '행정의 문화화'를 설파해왔다.
이른바 '기둥으로서의 문화행정'에서 '지붕으로서의 문화행정'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둥으로서의 문화행정'은 여러 부서들 중 문화적으로 접근해야 할 업무를 문화국이 담당하는 좁은 의미에서의 문화행정이며, 문화국 업무가 문화행정의 모두라고 보는 입장이다. '지붕으로서의 문화행정'은 행정 시책의 전 영역을 문화의 관점에서 검토·집행하는 것이며, 예컨대 도로나 공원 정비, 복지 시스템 설계나 소비 생활 지원에서도 문화의 모자와 옷을 걸쳐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행정이 개념상 모든 정책을 포괄하는 기본이념의 성격을 가져야 하며, 문화정책을 정점으로 다른 정책 전체가 문화정책에 수렴되는 구조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필자는 '기둥으로서의 문화행정'을 'I형 문화행정', '지붕으로서의 문화행정'을 'Π(파이)형 문화행정'이라 부른다. 문화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운운하는 서열적 개념의 한 끝이나 영역이 아니라 여러 정책의 맨 앞이나 위, 그리고 뿌리이자 전체이다. 이에 문화는 'Π형 문화행정'을 필요로 한다.
전남도청 국장을 역임한 호남대 박혜자 교수는 '행정의 문화화'를 위해 각급 단위 정부에 부서들을 망라하는 횡단 조직의 설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행정의 문화화 연구추진회의'를 두고 '행정의 문화화'를 실천한 일본 사이타마(埼玉) 현이 한 보기다. '행정의 문화화'는 '모든 행정 체질과 가치관의 문화적 변혁 운동'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일부 행정이 문화를 이끄는 '문화의 행정화'를 넘어 문화가 모든 행정을 이끄는 '행정의 문화화'로 나아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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