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석규 문화칼럼니스트 |
펄럭이는 깃발에서 사람들은 힘과 단합과 자신을 확인한다. 때로는 정겹고 때로는 위엄을 느낀다. 모든 기(旗)는 펄럭이는 데서 본래의 가치가 발휘된다. 그러나 한국국기 태극기는 컴컴한 방안의 액자 속에 갇혀 숨을 죽이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늘 높이 걸어 놓았다 해도 사기(社旗)나 새마을 기 사이에 끼어 기(氣)를 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힘 있게 펄럭이어야할 국기를 이렇게 억압하는 나라가 대한민국과 일본 말고 어디 또 있을까?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왕을 신(神)으로 떠받들면서 그 상징으로 왕이 거처하는 왕궁으로 들어가는 다리(二重橋) 사진을 내걸었다. 그리고 그 옆에 그들의 국기인 일장기를 액자 속에 넣어 나란히 걸었다. 관청의 사무실마다 걸었고 모든 학교 교실마다 걸었다. 그리고 아침마다 두 손을 모아 절을 하면서 일왕과 그 선조들에게 예를 올렸다. 조선총독부는 일본 본토(內地)보다 이 땅에 더 극성스럽게 다그쳤다.
8·15 광복이 되자 일장기와 왕궁 다리 사진은 박살이 났다. 면사무소와 주재소(경찰지서)와 학교 마다 두 그루씩 심었던 왜벚나무도 모두 찍어 눕혔다. 흰옷 입은 백성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소리높이 외치면서 그랬다. 그러나 강점기 때 일본말만 배우고 일본말만 쓰면서 일본식 사고에 찌든 양복장이들이 광복된 대한민국의 여러 분야에서 일하게 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라진 액자가 다시 등장했다. 똑같은 액자 둘을 새로 만들어 일장기 대신 태극기를 끼워 넣고 왕궁 다리 대신 대통령 사진을 들어앉혔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그 앞에서 '고마우신 대통령 우리 대통령' 노래를 불렀다.
서울의 고궁에서 늠름한 깃발을 앞세운 수문장교대식을 보면서 옛날 싸움터에서 펄럭이던 장수기 생각이 났다. 곳곳에서 하늘 높이 휘날리는 성조기와 하기식 때 걸음을 멈추는 시민들과 매일 아침 국기에 대한 맹서를 외우는 초등학교 어린이들… 미국에서 본 깃발들이 생각났다.그리고 나라가 부자라면서도, 일제가 하던 대로 한 번 쓰고 길바닥에 버려져 발길에 밟히는 태극기가 생각났다.
액자 속에 갇힌 건 태극기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말이나 예절, 사상과 관습에도 일본이 뿌린 독소로 얼룩진 경우가 많다. 정부 관료나 학계 언론계 가릴 것 없이 그 독소에 만성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일본 우파의 한국인을 약하게 만드는 '문화침략 전략'에 휘말려 있는 추한 모습에는 할 말을 잃는다. 나아가 그게 왜 나쁘고 위험한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데 놀란다. 지명도 높은 학자나 높은 자리 관료가 '그게 그런 것인 줄 미처 몰랐네요.'하면서 겸연쩍어 하는 경우를 만날 때면 아찔한 현기증이 인다.
광복 직후 정부 조직이나 문서양식은 총독부 때 그대로였다. 일본의 가나문자를 한글로 바꾸는 정도에 그쳤다. 대부분의 한국인 관료들 사고는 일제가 교육하고 훈련시킨 범위 안에 갇혀 있었다. 특별히 내 것과 내 나라를 강조하던 애국지사들의 외침이 있었으나 미미했다.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내 어릴 때 기억 하나가 있다. 일본인 교사가 쫓겨나간 8·15 광복 직후 그 초등(국민)학교에는 한국인 교사 세 분이 있었다. 한글을 아는 분은 한 분도 없었다. 한 분은 그 해 봄 징병검사에서 '갑종합격을 시켜주지 않으면 할복(切腹)하겠습니다. 천황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 해 주십시오.'라고 외치며 '천황폐하 만세!'를 불렀다는 분도 있었다. 그림시간에 그리는 포스터 제목이 '화지용심(火之用心)'이었다. '불조심'이란 우리말을 찾는데 1년 이상 걸렸다.
그동안 많은 개혁 작업이 있었음에도, 광복 70년이 가까운 오늘에도 '액자 속에 갇힌 태극기'나 '화지용심'식 독소문화는 우리 주변에 많이 널려 있다. 무지와 무관심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천천히 번져 언젠가 대형 참사로 터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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