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심 충남대 영문과 교수 |
그러나, 공권력의 개입 없이도 원칙이 지켜지는 사례를 목격한 적이 있다. 몇 해 전 나는 연구년 차 미국에 1년여를 머물렀던 때가 있었는데, 그 당시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매우 자주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경험을 했다. 새벽 2~3시께, 어느 때는 자정이 된 시간에 한 달에 두 세 번을 그것도 3~4개월 가까이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처음엔 '불이 났나?' 하고, 부랴 부랴 한밤에 뛰쳐나갔다. 불자동차 3~4대와 구급차가 아파트 단지 내에 요란하게 들어와서 한 시간을 넘도록 입주민들이 밖에서 속옷 바람에 추위에 벌벌 떨면서 서 있었다. 불이 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린 후에야 소방관들은 우리를 집으로 들어가게 했는데, 그 이후, 거의 열흘에 한번 꼴로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정말로 불난 것이 아닌데도 매번 모든 주민이 속옷 바람에 담요를 뒤집어쓰고 소방차가 확인할 때까지 짧게는 30분에서 1시간 넘도록 모두 영하의 추운 밤 밖에서 기다렸다. 결과적으로 그 화재 경보기는 정신이 약간 이상한 어떤 사람이 우리 동네에 와서 경보기를 자꾸 눌러대는 바람에 생긴 일이었다는 것이 몇 달 후 밝혀졌지만, 당시 나는 그 어디서도 '늑대 소년' 효과를 찾아볼 수 없었다. 공권력의 개입없이 모두가 정해진 원칙과 절차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그 일로 해서 미국이란 사회는 나름대로 문제도 많지만, 원칙을 잘 지키는 사회라는 인상을 가지게 되었고, 설사 잘 못된 것이 뻔해 보여도 이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자세를 보았다. 물론 미국도 범법자나 범죄자가 많이 있겠지만, 전반적인 풍토는 공공의 규칙이나 안전에 관해 상대적으로 매우 엄격하게 원칙을 지킨다. 덕분에 지역 텔레비전 방송에서 이 사건에 관해 우리 아파트 주민을 인터뷰 했는데 하필이면 내가 걸려서 인터뷰를 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생겨 기억속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우리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원칙을 너무도 쉽게 어기는 모습을 목격한다. 예를 들어, 나는 운전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의 운전하는 모습에서 느끼는 바가 많다. 우리의 자동차 문화는 그다지 길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자동차 5000만대 시대인 요즘 들어 점점 더 좌회전이나 우회전을 할 때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는 우리 국민을 보면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유가 무엇이든, 깜빡이를 켜도록 되어 있는 법규 정도는 어겨도 살아가는데 지장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사람들이 더 똑똑하고, 더 자신의 이익에 득이 된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있는 한 언젠가는 다시 세월호 같은 큰 사고가 생길 소지가 있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안전원칙을 저버린 세월호는 나 자신의 자화상은 아닌가 마음 속 깊이 반성한다.
왜 우리 국민은 깜빡이를 안 켜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가? 방향지시등을 켜는 사람이 오히려 소수에 속할 지경이다. 그까짓 사소한 방향지시등 쯤이야 안 켜도 아무도 말하지 않고, 아무도 잡아가지 않고, 아무도 벌금 매기지 않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는 안전 원칙을 따르지 않는 풍조는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Dura lex, sed lex(법은 엄정하지만 법은 법이다)'라고 한 로마의 격언을 다시 한번 이 세상에서 주목받게 하고 싶다. 실정법이든 사소한 법이든, 어긴 사람은 벌을 받고, 지킨 사람은 항상 대접받고 인정받는 공정한 사회가 된다면, 안전 불감증이 낳은 세월호 같은 사고는 적어질 거라고 믿는다. 법규를 집행하는 사람들도 이를 오남용 하지 않으면, 이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회가 될 것이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안전 관련 규정을 지키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하며 나는 오늘도 여전히 너무 심할 정도로 깜빡이를 켜면서 운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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