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규석]사회집단의 폐쇄성과 화식(貨殖)주의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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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규석]사회집단의 폐쇄성과 화식(貨殖)주의 너머로

[세설]서규석 한국폴리텍Ⅳ대학장

  • 승인 2014-06-02 13:41
  • 신문게재 2014-06-03 17면
  • 서규석 한국폴리텍Ⅳ대학장서규석 한국폴리텍Ⅳ대학장
▲ 서규석 한국폴리텍Ⅳ대학장
▲ 서규석 한국폴리텍Ⅳ대학장
52년 전, 우리는 한국만의 특수한 산업화를 시작했다. 경제개발을 해야 하는데 재원이 어디 있고, 시장인들 제대로 형성되어 있었겠는가! 그러다보니 정부가 계획하고 자본을 총동원하여 시장을 만들고 기업을 밀어주는 방식이 채택되었다.

초등학생의 코 묻은 돈까지 저축으로 끌어들이고 역(逆)금리를 도입한 내자(內資)동원, 대일청구권 자금과 베트남 파병 그리고 광부와 간호사 수출 등을 통한 외자(外資)동원으로 산업자금을 마련했다. 이것은 관치금융과 함께 시작되었고, 관료 전성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 세계 D램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은 64%, 휴대폰 출하량은 세계 1위를 기록 중일만큼 산업화에는 일단 성공했다. 그러나 고속성장에 비례하여 어두운 그림자도 짙게 드리웠다. 자살률은 높고 국민행복지수는 가장 낮다. 공공부문은 비대해졌고, 특권화 됐다. 사회집단도 폐쇄적이 되었다. 과정을 외면한 채 결과만 중시하는 가치관이 모든 사회조직을 화석화하는 독소가 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국가 사회의 조직 원리부터 개조해야 한다.

먼저 조직, 사회의 폐쇄성을 해소해야 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효율성과 합리성으로 무장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외피에 불과했다. 관료제는 공적부문을 너머 사적영역에까지 두터운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일부 노조는 장기근속자 자녀를 채용하는 고용 대물림을 원한다. 황제노역 판결을 만들어낸 향판제도나 국가 공권력을 무력화시키는 전관예우 역시 특수한 인간관계가 엮어낸 전근대적 야만(野蠻)이다. 지연, 동문을 따지는 폐쇄적 속박에 갇힌 사회는 정보화 시대, 특히 익명성에 기초한 신뢰사회를 만들지 못한다.

공공부문의 부패차단도 과제다. 검은 거래로 점철된 원전 관련 조직, 적자에도 성과급을 챙기는 공공부문 모두 소명의식을 잃었다. 투기와 위법을 밥 먹듯 하고도 고위직에 오르려 하는 자나 이를 용인하는 사회도 문제다. 앞에서는 스스로를 채찍하며 청렴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가치관을 표방하지만 뒤에서는 화식(貨殖)주의를 우상으로 섬기는 사회의 이중성 때문이다. 화식열전에 등장하는 71가지 방법 이상의 돈 버는 일에 집착하려면 사업에 투신하고, 공공부문에 종사하려면 소명의식을 갖고 헌신하도록 차별화되는 길이 만들어져야 한다.

기업의 덩치에 맞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본격 도입할 때가 됐다. 52년 전, 기업을 일방적으로 밀어주던 틀과 결별을 준비해야 한다. 국민총소득의 76%를 10대 기업이 차지할 정도다. 그런데도 일감몰아주기나 문어발식 탐욕은 끝이 없다. 경제활동 과정에서 갑의 횡포에 우는 자영업자나 소시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동안 하도급법에서만 이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환경오염, 국민안전과 건강 분야까지 적용된다면 적잖은 파급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산층과 시민적 가치관을 만드는 일이다. 1980년대의 중산층은 40대 고졸의 남자 가장이었지만 지금의 중산층은 맞벌이 부부에 대졸자로 바뀌었다. 민주화를 이끌었던 그들은 아파트에 발목이 잡혀 하우스 푸어로 전락한데다 베이비부머 은퇴자가 되었고, 그들을 대체할 건전한 중간층은 아직 없다. 이념적 대립을 피하려면 중산층 육성이 관건이다.

중심을 잡아야 할 계층이 없다보니 우리는 무상(좌파), 종북(우파)과 같은 그럴듯한 이슈를 중앙에 결집시키고 소용돌이를 일으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대중사회, 고독한 군중을 위해 반복적인 이벤트를 생산하는 유동성 사회로 빠져들기 쉽다. 다인종 미국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라는 시민의 종교가 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이후 강력한 행정국가로 존속했던 프랑스도 분권과 권력 간의 견제를 위해 헌법까지 바꿨다. 우리 역시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가사회의 틀을 바꿔가야 한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안전하고 편안한 국가를 만들려면 이처럼 1.5세대에 걸쳐 누적된 관행과 결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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