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묵 한밭대 총장 |
세월호의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유가족들이 통곡하고 대통령이 눈물을 보이고 온 국민도 함께 울었다. 국가적 재난을 당한 슬픔과 고통은 어느 나라든지 마찬가지겠지만 재난에 대한 극복과 대처방법은 나라마다 크게 다른가 보다. 2001년 3500여명의 사망실종자를 낸 미국의 9·11테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내에서 발생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구겨진 자존심은 뒤로 한 채 조직적이고 치밀한 사태수습과 일사불란한 정부와 의회의 협조 그리고 침착한 국민의 대처는 과연 자본주의 문화를 갖추고 있는 선진국다운 모습이었다.
2011년 3월에 동북지방 해안에 몰려든 쓰나미로 1만 8000여명의 사망실종자를 낸 일본은 조금 달랐다. 정부의 초기 매뉴얼 위주의 답답한 대응방법으로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를 당한 국민들은 인간으로서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냉정하고 차분했다.
몇 년 전 우리 대통령도 위로 차 방문했었던 중국의 쓰촨성 지진사태는 수만 명의 희생자를 냈음에도 인민해방군이 사고지역을 완전히 차단하고 마치 군사작전처럼 조직적으로 수습했다. 영국의 버큰헤이드호 사건은 더욱 감동적이다. 1852년 군인과 민간인을 태운 영국 해군 수송함 버큰헤이드호가 케이프타운 근처를 지나다가 암초에 충돌하여 두 동강이 났다. 배는 순식간에 침몰하게 되었고 구명정은 3척뿐으로 180명만 탈 수 있었다. 함장 시드니 세턴 대령은 모든 병사들을 침몰하는 배의 갑판 위에 도열시키고 부녀자와 어린이 160명만 구명정에 태웠다. 배가 가라앉을 때까지 군인들은 조국에 대한 경례 자세로 함장과 함께 서서히 물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은 영국 시민정신의 상징으로 오늘까지 자랑스럽게 전해오고 있다. 이런 대재앙들이 일어날 때마다 패륜아도 있고 영웅도 있기 마련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번 사건에서 패륜아만 있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선생님들과 인간적 용기를 갖춘 의인을 갖게 된 것은 그나마 큰 위로가 된다.
이처럼 모든 재난은 예기치 못하게 다가오고 각 나라의 가치문화에 따라 대처하는 방법과 국민감정은 크게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는 그동안 '잘 살아 보세'식의 성과중심으로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래서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올랐고 국민적 자긍심 또한 크게 향상 되었다. 그러나 삶의 질과 국민문화는 아직도 선진국과 큰 차이가 있다. 경직된 관료사회, 부패된 사회, 혼탁한 정치, 법을 경시하는 국민생활 등 우리가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더구나 요즘 사이버 공간에서의 막말 논란과 저질 선동정치로의 변질은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한다.
이번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안전관리부터 구조와 수습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국민적 감정과 기대치를 만족시키는 것이 없다.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을 총체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정부는 국가안전처 신설을 포함한 대책을 내놓았다.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국가안전시스템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재난을 겪으면서 그때마다 제도를 바꾸고 책임자를 처벌하였지만 사회문화와 삶의 가치가 바뀌지 않았기에 근본적인 개선은 실패했었다. 그렇다고 울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는 폭탄 돌리기식 삶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잘 살아 보세'의 경쟁적 삶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행복한 '인간다운 삶'을 추구해야 한다.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언제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슬기로운 민족이다. 우리의 미래와 희망은 버리지 말아야 한다. 지금 진도 앞바다에서 “울지 마오! 나의 대한민국이여!”라고 울부짖는 영혼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이 진정한 의미를 가슴깊이 새기어 성숙한 국민으로 다시 태어나야겠다고 다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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