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수신료 합산징수 폐지해야 시청자가 눈에 보인다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이승선]수신료 합산징수 폐지해야 시청자가 눈에 보인다

[논단]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14-05-22 14:09
  • 신문게재 2014-05-23 16면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교 교수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교 교수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교 교수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교 교수
한 달 수신료 2500원 중 고작 70원을 받아쓰는 EBS 교육방송의 '자본주의'라는 다큐 프로그램이 작년 한국방송대상 수상식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EBS에 대한 시청자들의 만족도와 광고주의 선호도도 덩달아 좋아졌다. 그런데 최근, 수신료의 대부분을 독식하고 있는 공영방송 KBS의 위상이 점입가경이다.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다. 되돌아보면 일그러진 KBS의 몰골은 이미 뚜렷한 징후를 여러 번 보여 주었다.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에 닉슨 미국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1년에는 168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진 '뉴스 오브 더 월드'라는 영국 신문이 폐간했다. 모두 도청사건 때문이었다. 2011년 한국의 KBS 기자 한 사람은 야당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 회의를 도청했다는 혐의로 검·경의 수사를 받았다. KBS 기자의 도청 의혹 사건은 결과적으로 흐지부지되었지만, 사건이 '흐지부지됐다'는 기억은 여러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1993년 제정된 'KBS 윤리강령'에 따르면,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는 프로그램을 그만 둔 뒤 6개월이 지나지 않으면 정치활동을 못하게 돼 있다. 공영방송 KBS의 이미지를 사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2013년 10월 18일까지 KBS의 '9시 뉴스'를 진행했던 대표 앵커는 2014년 2월 6일 오후 청와대 대변인의 자격으로 출입 기자들과 환담을 나눴다. 석 달 스무 날 만의 '사건'이었다. 보도국 문화부장을 맡은 그는 그 날 오전에 열린 여의도 KBS의 간부들 회의에 참석했었다. 구성원들은 공영방송 KBS 저널리즘의 자존심을 쓰레기통에 처박은 '허탈감과 분노', '부끄럽고 참담함' 때문에 말문이 막힌다는 성명서를 냈지만 여러 시청자들 머릿속에 '여의도 앵커와 청와대 대변인' 자리는 오십 보 백 보였다.

세월호 사건 현장에 공영방송 KBS는 국내외적으로 가장 많은 취재 차량과 취재 인력을 대거 특파했지만 피해자 가족들은 KBS가 공영방송 답지 못하고 언론인지조차 의문스럽다며 철저하게 외면했다. 진실을 방송하지 않는다며 거칠게 항의했다. 공영방송 수신료를 납부 해 온 피해자들은 오히려 상업방송 취재진들에게 정보를 제보하고 민영방송 앵커의 어깨에 기대어 참척의 깊은 울음을 토해냈다. 어버이 날인 5월 8일 밤, 카네이션 대신 자식의 영정을 가슴에 품은 피해자 가족들은 KBS 사장의 사과를 받겠다며 여의도에 갔다. 이번엔 사장이 그들을 외면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청와대로 향했다. 피해자 가족들이 노상에서 하얗게 날 밤을 샌 다음 날 오전, 청와대 수석이 KBS에 '말'을 넣었고 그 날 오후 KBS 사장은 청와대 앞으로 달려와 유족들에게 사과 했다. 사퇴당한 보도국장은 사장이 청와대만 바라보고 가는 사람이라며 여러 차례, 구체적으로 보도에 개입했다고 폭로했다. KBS의 신참 기자들부터 보직부장·특파원·양대 노조 등 다수 구성원들은 사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사장은 '엄벌과 경고' 메시지를 담은 특별담화문을 통해 사퇴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1973년 공영방송 체제로 전환된 KBS의 짧지 않은 역사에서, 시민들이 노골적으로 KBS의 정체성을 부정한 예는 많지 않다. 더욱이 KBS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뜻을 하나로 모아 스스로 위상을 성찰하려는 경우도 드물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KBS가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KBS 사장 인선 등 지배구조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지만 KBS가 진정 시청자들의 사랑과 신뢰 속에 살아가는 방법은 1994년부터 실시해 온 수신료 통합징수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 여부도 상관하지 않고, 납부 의사도 반영하지 못하는 '반강제식' 수신료 통합징수 제도를 유지하는 한, 공영방송 KBS가 시청자들에게 시선을 둘 가능성은 극히 낮다. 공영방송인 영국의 BBC와 일본의 NHK는 뉴스보도의 정확성과 공정성,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을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얻기 위해서지만, 그러한 자세가 공영방송의 의무이기도 하고 그래야만 시청자들로부터 온전히 수신료를 징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KBS에서 열심히 일하는 선·후배와 제자들의 면면을 볼 때 우리도 BBC와 NHK처럼 수신료 분리 징수를 통해 살아남을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가졌다. 시청자를 바라보고 걸어가야 KBS가, 한국방송이 산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2. 대전 재개발조합서 뇌물혐의 조합장과 시공사 임원 구속
  3.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4.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5. [사진뉴스] 한밭사랑봉사단, 중증장애인·독거노인 초청 가을 나들이
  1. [WHY이슈현장] 존폐 위기 자율방범대…대전 청년 대원 늘리기 나섰다
  2. 충청권 소방거점 '119복합타운' 본격 활동 시작
  3. [사설] '용산초 가해 학부모' 기소가 뜻하는 것
  4. [사이언스칼럼] 탄소중립을 향한 K-과학의 저력(底力)
  5. [국감자료] 임용 1년 내 그만둔 교원, 충청권 5년간 108명… 충남 전국서 두 번째 많아

헤드라인 뉴스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충청권 소방 거점 역할을 하게 될 '119복합타운'이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충남소방본부는 24일 김태흠 지사와 김돈곤 청양군수, 주민 등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19복합타운 준공식을 개최했다. 119복합타운은 도 소방본부 산하 소방 기관 이전 및 시설 보강 필요성과 집중화를 통한 시너지를 위해 도비 582억 원 등 총 810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위치는 청양군 비봉면 록평리 일원이며, 부지 면적은 38만 8789㎡이다. 건축물은 화재·구조·구급 훈련센터, 생활관 등 10개, 시설물은 3개로, 연면적은 1만 7042㎡이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