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최초의 충청권 출신 국회의장인 강창희<사진> 의장의 임기가 오는 29일 마무리된다. 강 의장은 자신의 취임사에서 '여야 모두 산술적 이해타산을 뛰어넘어 품격있는 정치철학과 국가관으로 서로 이해해 달라'로 촉구했다. 그 결과, 19대 전반기 국회는 1270여 개의 법안을 처리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대 국회 때보다 늘어난 수치다. 18대 전반기는 1241개, 17대 때는 745개였다. 여야 간 이해관계와 정책적 지향점이 다른 만큼 갈등과 마찰이 있었음에도, 나름대로 민생 현안에 주력했다는 평가다. 그 중심에 서 있었던 강 의장에게 국회의장 임기를 마무리하며 느끼는 그동안의 소회와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편집자 주>
▲충청권 최초의 국회의장이 되었을 때, 국회의장으로서 나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결국 충청권 정치인들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나 하나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충청권이 한국정치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직결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나는 국회 선진화법이 시행된 최초의 의장이었다. 선진화법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에 나올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장으로서 나는 국회법을 준수해야 했다. 의회민주주의는 인내와 시간의 축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전반적인 문제들이 나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고, 나아가 충청권 최초의 국회의장으로서의 평가에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일단 대과 없이 국회의장직을 수행했다고 스스로는 생각하는데, 국민과 대전 시민들, 그리고 충청권 전체의 평가는 어떨지 모르겠다. 좀 후한 평가를 해주시기 바란다.
-국회 선진화법이 시행되며 장단점이 있었다. 그에 대한 보완책을 제시한다면?
▲국회 선진화법은 정쟁으로 가득 찬 국회에 폭력과 같은 물리적 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국회가 스스로 만든 제도다. 국회 선진화법의 시행 후 국민에게서 국회 불신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볼썽사나운 여야 간 물리적 충돌이나 몸싸움이 사라지면서 선진국회의 초석을 놓았다고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국회 선진화법으로 인해 통과되어야 할 민생관련 법률안들이 제때 통과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통과시키지 못한 법안이나 예산은 하나도 없다. 조금 늦은 것은 있었어도 여야 합의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는 시간과 인내의 축적이다. 여야의 합의에 따라 만들어진 국회 선진화법은 적어도 19대 국회 4년은 해보고 평가와 비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장직 수행 동안 보람 있었던 일과 아쉬웠던 일을 꼽는다면?
▲국회의장직 2년여의 활동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버린 느낌이다.
우선, 보람 있었던 일을 생각하자면 21개국 의회외교를 통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양국 우호관계를 증진시킨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긴다. 또 19대 국회에서 국회기 및 국회의원 배지를 한글로 변경해 소중한 우리말과 글을 드높였던 점이나 제헌국회기념조형물의 건립, 국회의장 직속의 국회정치쇄신자문위원회와 여성ㆍ아동 미래비전자문위원회 출범 등으로 입법부의 지위 향상과 역량을 발휘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지역적으로는 대전시 예산 2조원 시대의 개막에 일조했고, 묵혀왔던 사업들이 국비확보로 말미암아 원활히 진행이 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한 점, 각종 기관의 신설 및 이전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주요 성과라 하겠다. 아울러 천주교 대전교구의 '아시아청년대회' 개최를 위한 예산 확보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 조금이나마 이바지를 한 것들이 기억에 남는다.
다만, 도청이전특별법안의 계류는 아쉬운 일이다. 지난 2012년 11월 '도청이전을 위한 도시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해 법안 통과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제 국회의장 임기 동안에 사실상 처리가 불가능한 점에 대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강 의장과 함께 박병석 부의장 덕분에 충청권 정치력이 신장 되었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국회는 국민의사를 표현하는 기관인 동시에 국가의사를 결정하는 기관이다. 이러한 국회를 대표하는 의장이 헌정사상 최초로 충청권에서 선출된 것은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정치의 변방이라 불리던 충청권에서 의장과 부의장이 함께 선출된 것은 지역의 정치력 신장을 물론이고, 충청인들의 자존심이 고취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대전과 충청의 발전에 초석을 놓을 기회였다고도 생각한다.
-최근 이완구 의원이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어떤 의미로 보나?
▲처음이라는 말은 시간적으로나 순서상으로 맨 앞을 나타내며 그만큼 중요한 위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면에서 19대 후반기 국회가 시작되는 중요한 시점에서 여당의 원내대표는 당의 꽃이라 칭할 만큼 중요한 자리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당의 원내대표로 이완구 대표가 충청권 최초로 선출된 것은 지역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국가적으로는 산적해 있는 많은 민생관련 법안 처리를 토대로 19대 후반기 국회의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다.
또한, 지역적으로는 충청권이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의 계기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대전과 충청이 명실상부한 정치의 중심에 있다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강 의장에게 대전 그리고 중구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1981년 정치에 들어와서 6선을 하는 동안 지역구에서 3차례 낙선했다. 낙선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나는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왜 대전 시민과 중구 구민은 그것을 몰라주는지, 야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현실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였고, 모든 것은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갔다. 내 마음속에 간직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에 당선됐든, 낙선했든, 나는 철저한 공인이며 대전시민의 대변자라는 그것 한 가지였다. 그 자세만큼은 흐트러진 적이 없었다. 변함없이 그렇게 하고 보니까 결국 시민들이 받아주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를 키워준 것은 대전시민이다.
-곧 의장직을 마치고 평의원으로 돌아가는데 향후 계획은?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은 2년의 국회의원 임기를 후회 없이 마치는 것이다. 국회의장을 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달라져서도민안 된다. 두 가지 과제가 있다. 하나는 중구와 대전 발전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인생을 멋있게 마무리하는 것이다. 인간 강창희가 그래도 대전과 충청권의 대표로서 뿐만 아니라 의회 인으로서 명예롭게 정치를 했다는 평가를 받도록 하겠다.
-세월호 침몰사태로 국민이 침통해 하고 있다.
▲정말 안타깝고, 정치인으로서, 특히 국회의장으로서 이 죄송하고 비통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한 길이 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중요한 제도와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결국 입법부의 역할이요 책무이기도 하다. 남은 임기 동안 정치인생의 마지막 과제라 생각하고, 이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 이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 이상이 더 지났다. 이제부터는 안타까움과 혼란에서 벗어나 마음을 추스르고,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고, 그 유가족들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지,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마음을 합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물론 책임을 물어야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물어야 한다. 지금 단계에서 국민통합의 최대 과제는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올바로 새겨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졌다. 무신불립(無信立)이라고 했다. 사회에 신뢰가 없으면 국민은 단합할 수가 없다. 정치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지금은 모든 것이 위기다. 여야 없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대담=최재헌 정치부장ㆍ정리=강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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