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메디치가의 '벽 허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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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메디치가의 '벽 허물기'

[세설]이준석 특허청 차장

  • 승인 2014-05-19 14:12
  • 신문게재 2014-05-20 17면
  • 이준석 특허청 차장이준석 특허청 차장
▲ 이준석 특허청 차장
▲ 이준석 특허청 차장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의 조각상 '피에타'는 르네상스 3대 거장 중 한 명인 미켈란젤로의 대표작이다.

이탈리아 로마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이 작품은 그 재료가 정말 차갑고 단단한 대리석인가 싶을 정도로 사실적이다. 인체 각 부분에서 드러나는 근육과 골격의 균형 또한 완벽하다. 인간의 모습을 보다 사실에 가깝게 묘사하기 위해 인체 해부학을 공부한 미켈란젤로가 연구성과를 조각에 반영한 결과라고 한다. '예술과 해부학의 융합'으로부터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이 탄생한 것이다.

명작의 탄생에는 눈여겨봐야 할 시대적 배경이 있다.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보티첼리 등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예술가라고 평가받는 이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5세기 인구 30만 명에 불과한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피렌체에서 메디치가(家)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으며 활동했다는 점이다. 당시 피렌체의 실질적인 통치자였던 메디치가는 금융업으로 성공한 15세기 유럽 최고의 부자 가문이었으며, 축적한 부를 광범위한 분야의 학문과 예술에 아낌없이 투자하였다.

군사력 증강만이 권력의 절대요소이던 당시 상황에선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당대의 수많은 조각가, 과학자, 철학자, 화가, 건축가, 시인 등 다양한 집단의 전문가들이 피렌체로 몰려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한 공간에서 메디치가의 지원을 공동으로 받던 전문가들은 각자의 분야를 견고하게 둘러싸고 있던 벽을 서서히 허물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협력관계가 된 그들은 자유로운 소통으로 분야를 넘나들며 수많은 작품과 연구성과를 만들어냈다. 피렌체는 역사상 가장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시대인 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집단의 교류와 융합을 통해 뛰어난 작품이나 아이디어가 창조되는 현상을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라 한다.

21세기는 이른바 '융합의 시대'이다. 인문학적 사고와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던 스티브 잡스는 그의 소양을 정보통신 기술에 접목해 스마트폰 시대를 열어 현대인의 생활방식을 바꾸었다.

최근 각광받는 빅 데이터를 활용한 마케팅, SNS, 각종 애플리케이션들은 심리학, 수학, 역사학 등의 인문학과 정보통신 기술이 융합된 대표적 사례들이다.

제조업의 혁신을 가져다줄 것으로 예상되는 3D 프린팅은 사용자가 직접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여 머지않아 소비자의 행동 패턴에 큰 변화를 줄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특허청을 찾은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인 토마스 프레이 소장은 “3D 프린팅이 인류에게 인터넷 이상의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이러한 시대 변화에 부응하고 창의성에 바탕을 둔 경제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전반에서 벽 허물기를 통한 메디치 효과가 발생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개방, 공유, 소통, 협력을 핵심가치로 하는 '정부 3.0'을 역동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간 정부가 독점하던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누구나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 공유하고, 이를 활용해 국민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정부와 국민 사이의 벽 허물기는 사회 전반의 벽 허물기를 유도하여 생각지 못한 영역에서 창의적인 성과물을 쏟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식재산권 분야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허와 상표, 디자인과 같은 창의성과 심미성에 바탕을 둔 권리가 서로 어우러져 융합될 때 메디치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우리 사회 각 영역을 가로지르는 벽이 허물어져 새로운 영역에서 창의성이 발현되고, 이를 지식재산으로 보호하는 기반이 확립된다면 창조경제의 실현은 좀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메디치가의 유산인 '벽 허물기' 시대정신은 오늘날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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