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로 그 어느 때보다도 가족의 소중함이 느껴지는 5월 가정의 달이다. 항상 밝고 경쾌했던 5월이지만, 올해는 엄숙한 애도의 분위기 속에서 우리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새삼스러운 고민을 던지주고 있다. 일상에서 가족은 부모와 자녀 등 서로에게 '절실함'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건 가족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2014년 5월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주변에서는 가정 불화로 인한 아동과 청소년, 부부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부모는 아이를 낳았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자녀들의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있고, 진정으로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가정의 달, 5월 손왕석(58ㆍ사진) 대전가정법원장을 만났다. 우리 지역에서 가족의 갈등과 문제를 가장 잘 꿰뚫고 있는 최고의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손 원장에게 가족에 대해 물어봤다. <편집자 주>
▲청소년 문제가 심각해지는 근본적인 까닭은 매우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청소년을 둘러싼 환경, 즉 가정과 학교, 사회 전체 모든 면에서 청소년기 올바른 성장의 기반이 되는 기능들이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가정의 기능이 급속도로 약화돼 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한 부모 가정, 맞벌이 등) 소위 예전의 '밥상머리 교육'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역사회 공동체가 갖는 교육적 기능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도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네라는 게 없어지면서 동네 어른도 없어진 겁니다.
또 학교에서 입시경쟁 치중으로 인성교육을 못하고, 사회 전반의 상업주의, 그에 맞물린 선정주의적 경향, 인터넷 등을 통해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가치를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잘못된 문화전달체계 등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만, 혹시 생각하시는 대책이나 처방은 무엇인지요.
▲국가 정책은 물론 사회구성원 모두가 잘못된 변화의 흐름을 깨닫고 그 방향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가정과 지역사회의 기능을 회복하는 쪽으로, 학교의 전인교육을 중시하는 쪽으로, 학교와 가정 사이의 공간에서 건전한 청소년의 문화를 개발ㆍ성숙시켜야 합니다. 더불어 무분별하게 온라인에 노출되지 않는 장치를 마련하고 오프라인의 긍정적인 매체를 통한 정서함양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비행청소년을 대상으로 추진 중인 6월 '지리산 행군'(로드 스쿨)이라는 색다른 프로그램이 있는데, 설명해 주시죠.
▲청소년 선도를 위한 가정법원의 신개념 후견프로그램입니다. 청소년에 대한 현재의 교정프로그램은 보호와 수용, 강제적 교육이라는 측면에 머물러 있고, 성행의 근본적인 개선이나 재비행 방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문턱(seuil, 세이유)' 밖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주는 것으로, 즉 아이와 전문자원봉사자(멘토, 스태프)가 1:1로 걷고, 대화하고, 함께 생활하고, 서로 부대끼면서 아이들 스스로 자아성찰을 통해 재비행에 나아가지 않도록 만드는 새로운 교정복지 프로그램입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4주간 200㎞(전후의 준비기간, 정리기간을 빼면 걷기는 7~10일 가량)를 걷습니다. 걷는 시간은 자아성찰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드스쿨'에 필요한 기반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가운데 시범사업으로 시행하는 것이어서 많은 수고와 비용이 드는 어려운 사업이지만 많은 청소년을 올바른 길로 선도할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프로그램이어서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지역의 유관기관(성공회 유낙준 신부 등)과 함께하고, 사회공헌사업에 관심이 있는 기업체의 도움도 청하는 등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혼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라고 보시는지요.
▲살아온 배경과 문화가 전혀 다른 불완전한 인간들이 한 지붕 밑에서 계속해서 함께 사는 부부생활은 한편으로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으려면, 결혼할 때의 좋은 감정만으로 막연히 앞으로도 잘 살 수 있다고 낙관하지 말고, 부부간의 올바른 대화와 공감하는 법, 상대방의 욕구를 파악하고 배려하는 능력을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젊은 부부의 경우, '어른'이 돼야 합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홀로서기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인격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독립적이고 자주적이며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아내가 잘못하면 그게 바로 남편의 잘못이고 남편이 못된 짓을 하면 그게 바로 아내에게 부끄러운 일이 된다는 것을 깨우쳐야 합니다.
-최근 '갈등완화형 이혼모델' 운영을 위한 워크숍을 개최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실제 적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혼재판을 '사실을 파헤쳐 나의 억울함을 알리고 상대방을 벌하는' 절차로 인식하고 있는 당사자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혼이 완료될 쯤에는 감정은 악화될대로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상 원수가 되는 셈입니다.
이혼을 하더라도 서로 적이 되지는 말자는 취지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나 법원이 노력한다고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법원 판사와 직원, 조정위원은 물론, 변호사, 법무사 등 이혼절차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와 같이, 첫술에 배부를 리 없듯이 지금은 시작단계이지만 꾸준히 노력해 나갈 계획입니다.
-아동학대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아동학대의 피의자 대부분이 친부모라고 하는데, 무엇이 문제라고 보시는지요.
▲가깝게는 일반적인 부모교육과 생활 속에서 부모 역할을 습득할 만한 모델의 부재, 가정문제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예를 들어, 체벌이나 가정폭력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등)를 갖는다는 의식 부족이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회가 물질만능주의로 치달으며 점차 각박해지고 인간성과 부모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심각한 정도로 약화돼 가고 있는 점, 그런 가운데 한 가정이 경제적으로 빈곤에 빠지면 자녀의 존재 자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됩니다. 전문적인 분석을 해 본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부담을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나약해진 부모가 궁지에 몰리고 정신적 파탄에 이르러 결국 보호, 양육해야 하는 자녀를 거꾸로 학대하는 경우가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동학대 피의자에 대한 법 적용을 놓고 논란이 있습니다. 국민의 법 감정 측면에서 사법부가 고려할 사안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법원의 판단은 그 결론이 일반적이든 이례적이든 국민에게 수긍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법원은 국민과 깊이 소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이 보기에 이례적인 판결이라 하더라도 비판에 앞서 과연 법원에서 그렇게 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는지를 먼저 궁금해하고 법원의 입장에 귀 기울여 줄 수 있을 정도로 법원이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최근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아버지를 살해하고도 집행유예라는 이례적으로 가벼운 선고를 받은 고교생 사례에 대해 일반 국민이 수긍하는 반응을 보인 데에서도 유사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동학대는 대부분 한 가정의 특수한 상황, 가해부모의 정신적인 문제, 사회의 무관심으로 인한 피해지속, 아동보호시스템의 불완전 등 복합적인 사회구조적 문제입니다. 법원의 엄정한 판결만이 대책이 될 수는 없겠지만, 법원도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숙지해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다문화 가정은 이제 우리 사회에 편입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많은데, 어떻게 진단하시고 어떤 대책이 필요할지요.
▲지적대로 다문화 가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이는 현재 국제결혼이라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남녀가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인격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은 '돈을 주고 신부를 사오고', 또 다른 한쪽은 '대한민국에 입국해서 돈벌이할 것'만을 위해 결혼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쓰는 것에 불과한 것이 현재의 국제결혼 실상입니다.
다문화 가정의 문제는 국가정책적인 차원에서 국가가 결혼과정에서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결혼 전후, 결혼 초기에 상호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극복하고 가정을 안정시켜 나갈 수 있는 올바른 태도 등에 관해 교육하고 지원할 수 있는 체계적인 사회복지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봅니다.
-진도 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한 말씀 부탁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학생들의 두려움과 가족들의 심정을 생각하니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며 분통을 터트릴 힘도 없을 정도로 참담한 심정입니다. '가족'은 정말이지 잃어보기 전에는 그 소중함을 진정으로 깨닫기가 어려운 것이지만, 잃었을 때는 그 참담함이 이루 말할 수 없어서 안타까움이 더합니다.
TV의 한 공익광고에서 보통 사람들이 집안에서 하는 언행과 집 밖(사회)에서 하는 언행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영상을 보고 감명 깊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들이 서로 노력해 행복하게 살기로 약속하고 가정을 이뤄 살면서도, 각자가 가정에는 소홀하고 어느 가족 구성원의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 다른 가족의 희생이 당연한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회적으로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 되더라도 그 가족을 잃으면 그 사람은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겁니다.
'이 세상 가장 빛나는 기쁨은 단란한 가정의 행복한 웃음입니다', '가족은 삶의 수단이 아니라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새기고 싶습니다.
-끝으로, 대전과 충남, 세종, 충북지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도 부탁합니다.
▲저는 경상도 사람이지만, 대전ㆍ충남에서 세 차례에 걸쳐 모두 9년째 근무할 정도로 이미 충청도 사람이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지역민들의 이혼소송을 진행해보면, '이 지역 사람들이 참 양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요즘 세태와는 달리, 그래도 이 지역사람들은 말을 좀 더 아끼고 표현이 부드러우며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속마음을 쉽게 털어놓지 않으려고 하거나 한번 마음먹으면 좀체 마음을 바꾸지 않는, 매우 질긴 경향도 느꼈습니다. 양반체면 때문인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의미에서 매우 외유내강한 편입니다.
이제는 옛날의 양반처럼 무게 잡는 것만 고집하지 말고, 새로운 시대감각에 맞게 자신의 마음을 잘 열어 보여주고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새 시대의 양반으로 업그레이드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대담ㆍ정리=윤희진 정치사회부 법조사건팀장ㆍ사진=이성희 기자
●손왕석 법원장은…
1956년 경남 밀양 출생 경복고, 서울대 철학과 졸업 제27회 사법시험(사법연수원 17기) 합격 대전지법, 인천지법, 서울지법, 서울고법 판사 대전지법 서울가정법원,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수석부장판사 2013년~현재 대전가정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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