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윤주]행복한 학교를 위하여

  • 오피니언
  • 사외칼럼

[황윤주]행복한 학교를 위하여

[교육단상]황윤주 부여초 교사

  • 승인 2014-05-13 14:02
  • 신문게재 2014-05-14 16면
  • 황윤주 부여초 교사황윤주 부여초 교사
▲ 황윤주 부여초 교사
▲ 황윤주 부여초 교사
“에이, 선생님 거짓말이죠?”

“아니라니까! 진짜 금동대향로가 부여박물관에 있다니까?”

“국보잖아요! 국보가 어떻게 부여에 있어요? 서울에 있는 박물관에 있는 거예요!”

우리 고장에 대해 배우기 시작하는 3학년 사회시간,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래? 그러면 이번 주 토요일에 가 보자!”

이렇게 시작된 학급 동아리 활동은 부여의 유적지를 찾아서, 문화체험활동을 찾아서 한 주 한 주 그 추억을 더해갔다. 동아리 계획을 잡은 토요일마다 일일이 집을 찾아 돌며 차에 태우고 다시 집까지 데려다 주는 수고 정도는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의 눈빛과 어디를 갈지 고민하는 설렘 속에 묻어 둘 수 있었다. 눈앞의 백제금동대향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다투던 아이들이 백제의 역사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관련 축제를 챙기며 지역의 주인으로 변화되어 가는 모습이 더욱 진심으로 아이들과 함께 하라고 채찍질해 주었다.

능산리 고분군 푸른 잔디 위에 참새마냥 조잘대며 앞서가는 아이들을 보며 문득 떠오르는 생각 하나. 늦잠을 자고 부모님을 따라 멜론 하우스를 서성이거나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수없이 돌며 보냈을 황금같은 토요일에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한 이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학교에 대한 추억이라고 한다면 나의 머릿속에도 여러 장의 사진이 남아 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부소산에서 놀다 자율학습에 늦은 일, 중학교 체육대회, 힘들었지만 친구들과 함께여서 재미있던 공부시간, 처음 나갔던 미술대회 등 그 종류도 감정도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너무도 선명하고 따스하게 남아 있는 한 장의 모습은 지금으로부터 가장 먼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기억이다.

교실 문이 열리며 시작되는 기억 하나. 삐걱 대는 복도의 나무마루를 눈앞에 두고 선생님과 인사를 나눈다. 짧은 인사 끝에 선생님께서는 긴 팔을 뻗어 아이들 하나하나를 따스한 품으로 끌어안아 주시곤 하셨다. 집에 가는 것보다 숨 막힐 듯한 그 포근함이 더 좋아 학교 오길 기다렸던 아련한 기억. 내 모습이 어떠한지 선생님의 모습은 어떠했는지는 흐릿하게 남아 있지만 가만히 허리를 숙여 내 작은 몸을 감싸주셨던 그 장면만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내 기억 속 행복한 학교의 모습이다.

이 기억은 교사가 된 나에게 늘 하나의 과제처럼 남아 있다. 내 기억 속 학교의 따스함과 행복을 나와 만나는 아이들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랄까. 저 멀리 목청껏 나를 부르는 아이들을 보며 손 흔드는 나의 모습도 아이들의 기억 속에 햇살처럼 따스하게 남아 삼십년 후에도 아이들의 이야기 거리로 남을 수 있을까?

지난 2월 학년의 마지막 날이 왔다. 일 년 동안 보아왔던 아이들의 특성에 따라 전인상도 주고 지난 이야기도 나누었다. 4학년이 되어 잘하라는 인사도 빠지지 않았다. 버스가 '빵~' 하고 아이들을 부르는 시간, 마지막으로 던진 인사 한마디. “애들아, 선생님 만나서 일 년 동안 고생 많았다.”

내 욕심에 맞추고자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괜한 고생을 시킨 것은 아닌가 싶었다. 때로는 채근하고 때로는 성질도 내며 아이들을 몰아붙이진 않았는지, 아이들의 기억 속에 행복하지 못한 학교의 모습을 심어주진 않았는지 뒤늦은 후회와 반성이 밀려왔다. 그런데 교실 문을 나서는 아이들의 대답에 순간 마음이 뭉클해졌다. “아니에요. 선생님 덕분에 우리가 더 재미있었는데요?”

어렸을 적 열심히 한 숙제를 검사받고 칭찬을 들은 뿌듯함. 아! 이 아이들도 누군가와 함께 했던 행복한 학교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겠구나!

올해도 어김없이 새로운 친구들과 한 반을 꾸렸다. 그리고 29명 아이들의 가슴속에 행복한 학교를 그려가기 시작한다. 2월의 마지막 날 29개의 서로 다른 행복한 학교가 아이들 기억 속에 한 장의 추억으로 남아 있길 바라며 나의 숙제는 다시 시작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2. 대전 재개발조합서 뇌물혐의 조합장과 시공사 임원 구속
  3.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4.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5. [사진뉴스] 한밭사랑봉사단, 중증장애인·독거노인 초청 가을 나들이
  1. [WHY이슈현장] 존폐 위기 자율방범대…대전 청년 대원 늘리기 나섰다
  2. 충청권 소방거점 '119복합타운' 본격 활동 시작
  3. [사설] '용산초 가해 학부모' 기소가 뜻하는 것
  4. [사이언스칼럼] 탄소중립을 향한 K-과학의 저력(底力)
  5. [국감자료] 임용 1년 내 그만둔 교원, 충청권 5년간 108명… 충남 전국서 두 번째 많아

헤드라인 뉴스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충청권 소방 거점 역할을 하게 될 '119복합타운'이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충남소방본부는 24일 김태흠 지사와 김돈곤 청양군수, 주민 등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19복합타운 준공식을 개최했다. 119복합타운은 도 소방본부 산하 소방 기관 이전 및 시설 보강 필요성과 집중화를 통한 시너지를 위해 도비 582억 원 등 총 810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위치는 청양군 비봉면 록평리 일원이며, 부지 면적은 38만 8789㎡이다. 건축물은 화재·구조·구급 훈련센터, 생활관 등 10개, 시설물은 3개로, 연면적은 1만 7042㎡이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