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왕로 대전지방국토관리청장 |
주민 모두가 단잠에 들어있던 토요일 새벽, 필자가 사는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잠결에 경적소리가 자그맣게 들려 어디서 사고가 났나보다 하고, 다시 잠을 청해 봤지만 계속되는 소리에 부스래 눈을 떴다.
거실로 나오니 여리게 연기 냄새가 코끝을 스몄다. 전등을 켜고 베란다 창문 밖을 보니 단지앞 도로에 소방차가 가득 차 있고, 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순간 당황도 됐으나 화재사고가 났음을 직감하고 우선 앞 베란다 창문을 닫았다.
뒤쪽 창문을 확인해 보니 닫혀 있었다. 어디에서 불이 난건지, 상황이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뭘 해야 하나 생각하니 탈출이 먼저다. 완강기도 생각났지만 4층이니 뛰어내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얼른 겉옷 하나만 걸친 채 연기가 차지 않았는지 현관문을 살며시 열어 봤다. 다행히 연기가 없어 뛰쳐나오니 복도는 이미 위층에서 내려오는 사람에다 급히 뛰어 올라가는 소방관으로 정신이 없었다.
주차장에 내려와 숨을 돌리고 살펴보니 화재는 9층에서 발생했고, 이미 엄청난 연기와 화염에 휩싸인 상황이었다. 마음 졸이고 있는 사이 다행히도 소방관의 신속한 진압으로 불이 더 이상 번지지 않았고, 인명피해도 크지 않았지만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날 새벽 화재 대처에는 분명 문제점이 있었다.
그 당황스럽고 혼란한 순간에 화재나 대피와 관련한 안내방송을 듣지 못했다(없었다)는 점이다. 스스로 알아서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 소란 속에서도 대피할 생각은 커녕 천하태평 잠을 자고 있었던 주민들도 분명 많았을 것이다.(이중 창문을 닫아 놓았더니 경적소리가 적게 들린 것이다)
소방관이 신속히 대처했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주민들의 안전을 1차적으로 책임지는 관리사무소의 안내방송이 있었어야 했다.
그것이 어려웠다면 출동한 소방관이라도 화재진압에만 진력할게 아니라 역할을 나누고 안내방송을 통해 놀란 주민들의 안전한 대피를 유도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월호 참사는 물론이거니와 이날 화재사고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방방재청의 화재 통계연감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아파트, 연립주택 등 공동주택에서 4027건의 화재가 발생하여 45명이 사망하고 418명이 부상을 입었다.
재산피해도 10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아파트와 주택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특히 수십, 수백 명이 함께 거주하는 공동주택의 경우 이번 기회에 화재, 지진 등 각종 사고에 대비한 매뉴얼을 점검하고, 훈련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관리사무소는 물론 소방관서도 공동주택에 대한 안전문제를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소방관서는 안내방송 등 관리사무소가 대처하기 쉽지 않은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민안전을 위협하는 생활 속 재해와 매우 밀접한 업무를 수행하는 우리 대전지방국토관리청도 이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현장중심의 재난안전체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먼저, 주요 터널과 도로건설 공사현장의 위기대응 매뉴얼을 검점하고, 위험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는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이번 세월호 참사가 선장, 승무원 등의 초동대처 미흡으로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함에 따라 현장요원들의 안전의식 고취와 위기대응 능력 향상을 위해 터널 내 사고발생과 도로건설 현장의 추락 및 붕괴 등을 가상한 모의훈련을 반복적으로 실시하는 등 국민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국민안전은 그 무엇보다 우선시돼야 할 우리 모두의 과제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며 이번에는 기필코 위기대응 시스템을 완전무결하게 재정비해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지켜내는 소중한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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