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용 대전 법동초 교장 |
난감한 상황이 연이어 연출됐다. 2층에서 계단을 통해 내려오던 2학년 남학생이 꾸벅 인사를 하더니 필자의 옷을 손바닥으로 스치면서 한 마디 던졌다. “교장 선생님, 날씨가 더운데 왜 털 있는 겨울옷을 입고 다녀요?” 웃음보가 터졌다. 더운 날씨에 털옷을 입은 교장 선생님의 건강이 걱정 되었든지, 아니면 패션 감각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든지, 필자에 대한 학생의 관심이 표출한 것이다. 고마웠다.
교장실에 들어서자마자 현황판으로 발길을 돌렸다. 우리 학교 550명의 얼굴 사진과 이름이 붙어 있다. 금년에 학교 특색과 학교 현황판을 치우고 전교생의 얼굴 사진으로 교체했다. “교장 선생님, 교장 선생님!”하고 다정하게 다가서는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 조금 전에 필자에게 관심을 보였던 두 명의 학생을 찾기 시작했다. '아하~! 어깨를 주무르던 학생은 6학년 김00이고, 털 달린 겨울옷을 입었다던 학생은 2학년 오00로구나.' 학생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몇 번이고 되뇌었다.
요즘에 필자는 틈만 나면 전교생의 얼굴 사진을 바라본다. 전교생의 얼굴이 담긴 현황판은 생각했던 것 보다 필자에게 더 큰 힘이 되고 있다. 아직 전교생의 얼굴과 이름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기억했던 학생의 얼굴과 이름을 확실히 매조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학생들을 찾을 때에도 아주 유용하다. 며칠 전, 2학년 학부모님께서 당신의 자녀가 교내 노래 부르기 대회에 출전했을 때 반주해 주던 6학년 학생에게 선물하고 싶은데 얼굴만 알고 이름을 모른다고 하셨다. 2학년 학생은 교장실 현황판에서 금세 6학년 언니를 찾아냈다.
오늘도 현황판에서 학생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1학년 학생들의 얼굴을 살펴보다가 눈길이 한 곳에 꽂혔다. “요 녀석이다.” 지난 4월에 공주산림박물관으로 현장체험학습을 떠난 3학년 학생들의 안전을 확인한 후 1학년이 떠난 오월드를 찾았다. 사파리 관람을 마친 1학년 학생들은 필자를 보자마자 “교장 선생님이 어떻게 오셨어요?”라며 반갑게 맞이했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데 갑자기 손가락이 엉덩이 사이로 들어왔다. 말로만 들었던 똥침이다. 교단 생활 32년만에 처음이다. 이것도 교장에 대한 관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2학년 학생들에게 눈길을 돌린다. 1학년 때부터 필자와 결혼하고 싶다던 여학생의 얼굴이 보인다. 요즘도 가끔 그 학생을 만난다. “왜 제가 1학년 때에는 교장 선생님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 “엄마에게 혼나요.” 필자의 물음에 학생이 웃으면서 우문현답을 한다. 3학년 학생들의 얼굴을 쭉 살피다가 멈춘다. 학교 가기 싫어하던 자녀가 교장 선생님을 만난 후에는 아침 일찍 일어난다며 딸을 빼앗긴 것 같다는 편지와 함께 손전화 고리를 선물한 어머니의 따님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앉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구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이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얼마나 고마웠던가. 내일엔 더 많은 학생들에게 “누구야!”라고 자신 있게 불러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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