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헌]“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최재헌]“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중도시감]최재헌 정치사회부장

  • 승인 2014-05-01 14:59
  • 신문게재 2014-05-02 17면
  • 최재헌 정치사회부장최재헌 정치사회부장
▲ 최재헌 정치사회부장
▲ 최재헌 정치사회부장
“가슴이 답답합니다. 벌써 보름 넘게 그렇습니다. 때론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더 답답해집니다. 채 피지도 못한 아이들에 대한 죄스러움은 오래 갈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저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어른 말 잘 들으라는 말은 이제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는 마음은 죄의식이다. 죄의식은 가슴을 조이는 통증으로 다가온다. 아직도 침몰한 배안에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통증은 더욱 커진다. 생각을 아예 접어 다른곳으로 시선을 돌려 보려 한다. 그래도 죄의식과 멀어질 수 없다.

죄의식은 ‘왜 지켜 주지 못했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아니, 조금이라도 지켜주려고 노력해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의 의지대로 할 수 있게 놔두었더라면 이같은 죄의식을 덜 했을 수도 있다.

가장먼저 상식을 뛰어넘는, 선원들의 몰염치에 치가 떨린다. 나의 죄의식의 화살은 그들에게 가장 먼저 달려간다. 객실에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으라는 선내 방송. 속옷 차림에 저 먼저 살겠다고 빠져나온 선장과 대다수 선원들. 자기들은 대피하면서 학생들이 있는 객실 복도를 불과 몇 미터 차이로 그냥 지나친 선원들. 아, 금수만큼도 못하구나 하는 말도 부족하겠다.

그런데 허망하다. 정부나 수사기관, 언론의 칼날은 선박회사 소유주의 비리와 과거로 달려간다. 사정의 칼날이 어디로 향할지 몰라 관련기관들은 빠져나가기 바쁘다. 선원들이 승객들을 놓고 빠져나가는 것과 결과적으로 뭐가 다르겠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정부의 정말 정말 부실했던 사고후 대처는 더 가관이다. 국무총리는 사표를 냈고, 대통령이 사죄까지 했다. 그런데도 죄의식은 가라앉지 않는다. 언제 부터인가 사고 원인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조차 사라지고 있다. 불분명한 ‘유언비어’라며 수사와 엄단이라는 이름으로 소통마저 가로막혀 있다. 그럴수록 ‘의혹’은 죄의식을 더 키운다.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기레기’라는 말을 스스로가 ‘인정’하게 만들 만큼 이번일은 너무도 충격이 크다. 좌절과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 모르겠다. 살아온 날들에 대한 반성은 시간이 더 필요하겠다.

우리 모두의 죄의식은 어떻게 해야 치유가 될 수 있을까. 시간이 약인가? 그렇지 않다. 이대로라면 언제 어디서든 또 다른 대형 인재가 우리 자식들을, 나를 노릴게 분명하다. 내 스스로 나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한번 돌아봄직하다. ‘최소한의 의무’ 말이다. 나에게 주어진 의무를 열거하자면, 사람마다 그 생각의 폭이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기본적인 상식이 통하는 ‘의무감’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우리 아이들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지방선거가 얼마남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세월호 참사가 가져올 여파에 주목하고 있다. 여당 후보들은 전전긍긍하고 있고, 야당 후보들은 표정관리 중이다. 어찌보면 당연하겠다. 하지만, 이번일이 어느 한 집단만의 잘못이겠는가. 이 땅의 정치인들은 무능한 정부당국 못지않은 뼈저린 반성이 필요하다.

비극적인 세월호 사건으로 여러 사람이 옷을 벗을 것이고, 문책을 당할 것이고,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가슴에 남아있는 죄의식에 대한 심판은 스스로가 내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죄 값을 더는 일은 지방선거와 앞으로 또 다가올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에서도 작동해야 한다.

‘플라시보 효과.’ ‘가짜 약’을 들이대며 이번 사태로 깊은 상처를 입은 국민들을 진정시키려는 시도가 줄기차게 이뤄질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심정은 가짜 약이라도 먹고 언제 치유가 될 수 있을지 모를 ‘죄의식’을 덮고 싶은 마음이 솔직한 심정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4.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5.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1.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2.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3.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4.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5. 대전시주민자치회와 제천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자매결연 업무협약식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