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재 교수(한밭대 설비공학과) |
그러나 잠시 후 뉴스 속보를 통해 사망 1명의 소식이 전해지더니 이윽고 상황은 급격히 변해 오후 들어 다수의 사망자 또는 실종자가 속출하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2주가 지난 지금 탑승인원 476명 중 구조된 인원이 겨우 174명에 불과하고 사망자와 실종자 수를 합쳐서 무려 302명(정확한 탑승인원 모름)에 이르는 건국 이후 두 번째로 인명피해가 큰 사고로 기록되게 되었다.
1970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수많은 인명피해를 가져온 사고가 자주 발생하였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1971년 12월 25일 발생한 서울 충무로 대연각 호텔 화재 사고(사망 163명, 부상 63명), 1972년 12월 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서 발생한 시민회관(사망 53명, 부상 78명)화재 사고, 1974년 11월 3일 서울 전농동 대왕코너 화재 사고(사망 88명, 부상 35명), 1977년 11월 22일 전북 이리(익산)역 폭발사고(사망 59명, 부상 130명)가 발생하였다.
1980년대에 발생한 대형 사고로는 1984년 1월 14일 부산 부전동 대아호텔 화재 사고(사망 38명, 부상 68명), 1987년 11월 29일 미얀마 근해에서 발생한 대한항공 858편 보잉 707기 폭발 사고(사망 115명) 등을 들 수 있다.
1990년대에도 국내에서는 대형 사고가 비교적 많이 발생하였다. 1993년 한 해에 3건의 큰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1993년 3월 28일 부산 구포역 열차전복사고(사망 78명, 부상 198명), 1993년 7월 26일 목포 공항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사망 68명),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 위도 서해 페리호 침몰 사고(사망 292명) 등이다. 또한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사고(사망 32명, 부상 17명), 1995년 4월 28일 대구 지하철 공사장 도시가스 폭발사고(사망 101명, 부상 202명)가 있었으며, 1995년 6월 29일 발생한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사망 501명, 실종 6명, 부상 937명)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대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대형사고의 수는 1990년대에 비해 많이 감소하였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 전까지 가장 비참한 대형 사고는 2003년 2월 18일 대구시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지하철 전동차 화재사고(사망 192명, 실종 21명, 부상 151명)다. 그리고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발생한 천안함 피격사건(사망 40명, 실종 6명)이 있다.
세월호의 전복은 화물의 과적, 평형수의 부족으로 인한 배의 복원력 상실, 선박의 증축 또는 내부 구조변경 등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보다 더 큰 문제점은 선장을 포함한 선박직 선원의 무책임과 초기 신고 접수 직후인 오전 9시 직전부터 약 2시간 이상, 즉 피난·구조를 위한 황금시간을 놓친 해경 및 당국의 초동조치 미흡에 있는 것이다. 희생자의 가족을 포함한 국민 모두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으로, 이번 사고를 계기로 국민은 정부의 재난대응체계 및 구조·구난역량의 부족함을 크게 느꼈을 것이다.
국회에서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개정안을 상정해 추인하고, 언론에서는 한국해운조합의 관리·감독 기능에 대한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은 물론, 침몰 사고 관련 장관 및 책임자의 문책에 나아가 부분·전면 개각론까지 거론하고 있다. 국무총리의 사고 수습 후 사퇴하겠다는 소식에 이어 대통령도 국민께 사과하며 국가안전처(가칭)를 신설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국가재난대응체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확립하고 이런 체제가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훈련시기와 방법을 법령에 담아서 시행해야 할 것이며, 재난에 안전한 나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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