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처방전에 의해 약을 조제하다보니 약사의 실력보다는 약국의 위치가 약국성공의 가장 큰 비결이 됐다. 약사의 입장에서는 우울한 상황이 돼버렸다.
지난 2월 대전시약사회의 수장으로 새롭게 선임된 정규형<사진> 약사회장은 이러한 약사들의 단순히 약을 판매하는 직능을 벗어나 국민 건강에 대해 일차적 관리자로 변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규형 회장은 “기존에는 약에 대한 지식이 약 전문가만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약에 대한 정보와 병에 대한 정보가 언론과 인터넷 등에 홍수처럼 나와있다”며 “이 넘치는 정보들에 대해 약국의 약사는 정보를 조정하고 판단해 약의 오남용을 방지하는 건강 전문가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 “약의 종류가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약 관련 사고가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며 “약 정보의 홍수 속에서 맞춤형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약사의 역할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9년간 대전시 약사회는 홍종호 회장이 3선을 하며 이끌어 왔다. 오랜시간 지역 약사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해온 홍 회장의 뒤를 이은 정규형 회장은 책임감과 앞으로의 뚜렷한 발전 방향을 갖고 있다.
정 회장은 “9년간 홍종호 회장이 대전시약사회를 이끌면서 전국지부장 회장도 지냈다. 전국적으로 대전시 약사회 위상을 높여주는 역할을 해왔다”며 “강력한 추진력으로 회관건립도 이룩했다. 자체행사를 이곳에서 할 수 있을만큼 큰 규모다. 홍회장의 기틀 속에서 새로운 도약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약사역할 재정립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집행부가 일방적으로 이끌고 가기보다는 회원들과 서로 연구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가지려 한다”며 “방안중의 하나로 약사 교육을 충실하게 진행하려 한다”고 밝혔다.
또 “과거에는 연수교육등이 형식적인 편이었고 시간때우기 식이었다면 교육을 주말로 바꿔 제대로된 콘텐츠 교육을 시키려 한다”며 “새롭게 교육문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충남대 약학대학 교수를 초청해 매주 회원들을 재교육 시키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최근 약사회는 법인약국 문제가 첨예하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해 12월 제4차 투자활성화대책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올 상반기중 약사법 개정을 추진해 영리법인약국 설립을 허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정부는 지난 2002년 헌법불합치 판결을 반영하며, 현재 약국 운영이 약사 1인이 운영하다보니 영세하고 경영이 비효율적이다. 영세 약국들은 병원처방약을 모두 구비하지 못하고, 구비한 약품도 일부만 판매하고 재고가 쌓이고 있다는 문제점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법인약국을 허용하면 약국의 경영이 기업형의 합리적 경영으로 전환하고 법인의 자본축적으로 약국설비 등에 다액 투자가 가능하다고 기대효과를 제시했다.
이러한 정부의 계획에 대해 대한약사회와 지역약사회, 약사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기존의 개인약국들이 의약품 전문가로서 윤리성을 기반으로 경제활동을 했다면, 법인약국이 허용되면 대자본의 이익 창출을 위한 영리추구형 경제활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2001년 노르웨이는 법인약국을 도입했다. 도입 10년만에 3개 도매법인이 전체 약국의 85%를 점유했고, 거꾸로 말하면 개인약국의 85%가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다. 약국 대형화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예상했던것과 달리 의약품 가격 하락은 없었다. 경영효율성 강조로 약국당 평균 근무자수는 24.9%가 감소했다.
지난 2006년 법인약국을 도입한 헝가리 역시 체인법인약국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지역약국의 줄도산과 폐업이 이어졌다. 체인약국 등은 수익이 목적이다보니 도시로 집중되면서 지역 환자들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부작용을 초래했고, 시행 4년만에 다시 법인약국 허용을 막고, 약사만이 약국 설립이 가능하도록 재개정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정회장은 “과거 대자본의 제과점이 문을 열면서 동네빵집이 모두 문을 닫았다. 약국도 마찬가지”라며 “안전 상비약을 편의점에서 파는 부분은 국민에게 편리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필요할 수 있지만 법인약국은 내용자체가 다르다. 법인 약국은 영리성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접근성 떨어지는 시골은 약국을 폐쇄하고 돈되는 대도시로만 몰리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초기에는 약값을 싸게하다가 시장이 정리되면 약값이 올라간다. 외국에서도 여러차례 증명된 사안”이라며 “약사가 전문직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법인약국의 직원이 되면 전문가적인 양심이 아닌 판매 매뉴얼에 의한 약을 팔게 된다. 대기업은 마진이 좋은 물건만 팔게되고, 환자들은 더 많은 약값을 부담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법인약국 도입이후 일자리 감소와 비정규직 증가를 초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노르웨이의 경우 법인약국 이전에 약국당 약사수는 2.2명이었지만 법인약국 이후에는 1.8명으로 시행 5년만에 18.2%가 감소했다. 약국당 종업원 수 역시 법인약국 이전에는 15.5명에서 이후에는 11.5명으로 25.8%가 감소했다. 미국의 경우 약국당 평균약사수는 법인약국이 2.35명으로, 개인약국은 2.69명으로 개인약국이 0.34명 더 고용하고 있다. 그러나 법인약국의 경우 약사당 1일 조제건수가 101건이었고, 개인약국은 43건이었다. 현재 한국의 경우 약사 1인당 조제건수는 58건이다. 빠른 시간내에 환자에게 적절한 복약지도 없이 약을 제공하면서 피해는 결국 환자들이 입을 수 있다는 우려다. 미국 환자들의 약국 만족도를 보면 확연한 차이가 있다. 개인약국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는 반응이 전체의 78%였으며, 체인약국은 60%에 그쳤다.
정 회장은 “처방전이 없어도 경쟁력 있게 약국이 남아있는 곳이 있다. 약사 개인이 공부를 많이해서 환자 만족도를 높이는 약국들이 있다”며 “여러가지 형태의 모델 약국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대자본에 의해 수직화되면 이러한 독립약국이 없어지게 되고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만큼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회장은 어린시절 미생물 학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9남매중 7번째 였던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약대에 진학했다. 미생물 학자가 됐으면 대학교수가 돼있을 것이라는 그는 가지않은 길에 대한 궁금증은 있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노력하고 일에서 만족감을 찾았다는 면에서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는 “대전지역 약사들이 약국하기 편한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지역사회와 연대강화를 통해 약사의 위상을 높이고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약사회가 되길 희망한다”며 “후배들은 좋은 환경 속에서 국민 건강을 위한 봉사를 해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 진로를 위해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법인약국을 국민들을 위해 후배들을 위해 막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대담ㆍ정리=김민영 기자ㆍ사진=이성희 기자
●정규형 약사회장은…
1957년 대전출생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졸업 (주)중외제약 근무 대전중구 약사회 부회장 (주)아고라 대표이사 동구 선거방송 토론위원회 위원 대전 세무서 세정자문위원 (사)풀뿌리 사람들 이사 (사)대전언론문화 연구원 이사 심평원 대전지원 비상근 심사위원 대전시 약사회 부회장 대전 마약퇴치 운동본부 본부장 대한약사회장 표창수상 대전시약사회장 표창수상, 대전시장 표창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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