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규석]한국사회의 질병, 결과중시 사회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서규석]한국사회의 질병, 결과중시 사회

[세설]서규석 한국폴리텍Ⅳ대학장

  • 승인 2014-04-28 14:37
  • 신문게재 2014-04-29 17면
  • 서규석 한국폴리텍Ⅳ대학장서규석 한국폴리텍Ⅳ대학장
▲ 서규석 한국폴리텍Ⅳ대학장
▲ 서규석 한국폴리텍Ⅳ대학장
세월호의 침몰은 우리의 위기관리 역량, 품격, 책임감이 어느 수준인지를 잘 확인시켜 주고 있다.

승선관리는 전근대적이고 항해기록조차 없다. 국민안전을 책임지는 선장과 선원들은 규정을 어기고도 발뺌하기로 일관하고 있다. 이를 감독하는 기관도 형식적이고 적당하게 눈감아주는 부실한 관리를 해 온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법은 있으나 지키는 자만 손해보고, 적당하게 처리하는 자가 대접받는 관행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사회 전반에 스며 있다. 이제껏 우리를 짓누른 지배적 가치관인 '결과 중시, 과정 무시'와 결별하지 못한 것도 참사에 일조한 것이다. 이런 가치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요소를 꼽으라면 필자는 특권으로 작용하는 관료제, 그리고 상부구조인 정치를 지적하고 싶다. 관료제는 전문성과 합리성의 상징이고 명확한 권한과 체계적인 조직으로 우리의 경제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문제는 공공부문의 영역이 매우 넓고 그 힘이 강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퇴직관료를 영입하여 로비스트로 활용하는 데서 파생되는 문제점이다.

특히 이번 사고에서 보듯이 생명과 직결되는 선박검사와 안전관리분야 업무를 수행하고 기관에 퇴직관리가 자리하는 것도 감독의 약화 우려를 낳고 있다. 기업과 이익단체가 퇴직관리를 활용하여 예리한 정부의 창(법과 규제)에 방패역할을 하고 있다면 그에 대한 대책도 있어야 한다. 일부 기업들의 탐욕스런 이익추구가 판을 치고 어쩌다 법망에 걸리면 일부 재산을 내놓는 방식으로 일이 처리되는 것도 법의 정신을 훼손한다.

대한민국 전체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치체제도 문제다. 서구에서 정당들이 100년, 200년씩 지속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3, 4년에 한 번 꼴로 문패를 바꿔달기에 급급하고, 선거 직전까지도 게임규칙을 바꾸기 바쁘다. 정당이라는 정치제도가 사람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선거 때마다 빅맨이 나타나 판을 뒤엎는 변화를 시도하다 보니 정치제도 그 자체가 성숙되는 과정을 찾아볼 수가 없고 의회정치도 대립적이며 권력의 인격화만 가져오게 되었다.

우리는 지난 세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한 끝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에 올라섰지만, 세월호 참사와 같이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법을 만들고 지키고 적용해야 하는 주체들부터 법을 무시한 데서 오는 것이다. 정치영역에서의 끝없는 판 뒤집기와 재빠른 변신도 한국사회에서 절차와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만 중시하는 풍조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예측 가능한 사회를 쌓는데 실패하게 만든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다.

과정은 무시되고 결과만 좋으면 된다거나,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임기응변식 사고와 행태가 지금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이다. 이제는 이렇게 갈수 없는 것이 자명해졌다. 우리가 서둘러 산업화를 달성하면서 책임의식과 절차적 정당성을 마련하는데 익숙하지 않지만, 절차적 정당성, 행위규칙, 게임규칙을 갖지 못한다면 선진국으로 올라설 수는 없다.

우선 일반인의 의식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정치부터 달라져야 한다. 정치란 막스 베버의 말대로 정열과 판단력을 구사하면서 단단한 판자에 힘을 모아서 서서히 구멍을 뚫어가는 작업과도 같다. 어느 날 갑자기 빅맨이 나타나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줄 거란 믿음은 환상이다. 정당이 사람을 길러내지 못하는 한 인물중심의 정치는 법에 의한 규칙이 지배되는 사회를 만들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중간과정을 무시하고 편법과 부적절한 수단을 가지고 의도하는 목표를 달성해도 된다는 시그널로도 작용한다.

이제 우리는 부적절한 수단을 사용했을 때 비록 그것이 성공했을지라도 용인해서는 안 된다. 정의론의 저자인 존 롤즈는 절차적 정의가 지켜져야만 공정한 기회의 원칙이 설 수 있다고 보았다. 절차적 정의가 없이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본 것이다. 공정한 절차는 그것이 진실되게 수행되었을 때에만 공정성을 부여받는다고 한 것이다. 결과를 내려면 수단과 방법도 좋아야 하는 것 선진사회이다. 편법과 나쁜 수단의 사용은 성공할 수 없다는 가치관이 사회저변에 깔려야 정상사회로 다가설 수 있다. 시민의 안전이 제일이고 절차가 준수되는 선진사회 만들기는 더는 일회성 땜질, 대증요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2, 3년 혹은 다음 정부까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치밀하게 준비하고 실천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4.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5.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1.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2.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3.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4.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5. 대전시주민자치회와 제천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자매결연 업무협약식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