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미강]대전문학관에 온 '만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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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강]대전문학관에 온 '만다라'

[문화초대석]권미강 대전문학관 운영팀장

  • 승인 2014-04-27 15:04
  • 신문게재 2014-04-28 16면
  • 권미강 대전문학관 운영팀장권미강 대전문학관 운영팀장
▲ 권미강 대전문학관 운영팀장
▲ 권미강 대전문학관 운영팀장
‘불법(佛法)의 모든 덕을 두루 갖춘 경지’ 라는 뜻의 ‘만다라’는 신들이 사는 신성한 장소이자 우주의 힘이 응집된 곳이기도 하다. 그 자체가 우주를 상징하는 ‘만다라’는 흰두교와 탄트라불교에서는 종교의례를 거행하거나 명상할 때 사용하는 상징적인 그림이기도 한데 산스크리트어로 ‘본질을 소유한 것’ 정도의 뜻이라 한다.

불교를 좀 아는 사람이거나 불자가 아니라면 낯설기만 한 ‘만다라’는 세인들에게는 이런 본래의 뜻과는 달리 영화로 알려졌다. 1981년, 임권택감독을 해외영화계에서 주목하게 만든 영화 ‘만다라’는 구도의 길에서 갈등을 겪는 승려의 이야기지만 불자로서는 조금은 거북한 장면도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만다라’는 CNN이 선정한 역대 아시아 최고 영화 18편에 포함될 만큼 수작이다.

영화 ‘만다라’의 원작은 소설 ‘만다라’고 작가는 김성동이다. DNA같은 수식 중 맨 앞에 오는 소설가 김성동. 그를 설명하기 위해 굳이 ‘만다라’의 근원부터 얘기한 것은 그의 삶이 자신의 ‘만다라’를 찾는 궤적(軌跡)같아서다. 그에게 ‘만다라’는 자신을 세상에 알린, 영화화해서 재미를 좀 본, 그런 정도가 아니라 삶의 중턱에서 가장 힘겨운 길을 앞두고 잠시 다리를 쉬며 왔던 길을 되돌아보고 가야할 그 험난한 길을 올려다보는 긴 숨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해방공간이던 1947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서라벌고 3학년인 19세 때 출가해 10여 년간 불교승려로 살아야 했던 그에게 가족사는 우리 민족사이자 아픔 분단사이기도 했다. 그가 4살 되던 해,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가 해방 후 좌익활동가란 이유로 산내 뼈잿골에서 학살됐고 작은아버지도 청년단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홍성면장이었던 외삼촌은 인민재판에서 처형당했다. 그야말로 친가와 외가가 혼란스러운 시대 속 좌우익의 희생물이 된 것이다. 바로 민족분단사의 비극을 온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온 작가가 바로 김성동이다.

그의 출가는 바로 이런 가족사에서 기인됐다고 볼 수 있다. 아홉 살배기 손자의 손을 잡고 대전으로 이사하던 날 할아버지에게 사복경찰들이 찾아와 이사 온 연유를 불온하게 불으며 어린 그에게 ‘붉은 씨앗이군’이라고 한 말이, 그래서 평생 연좌제에 묶여 일거수일투족이 발가벗겨지던 일상이 그에게는 속세를 떠나라는 두려운 명령으로 느껴졌으리라.

문학은 그의 두 번째 출가처이다. 소설 ‘목탁조’로 「주간종교」종교소설 공모당선은 불교계를 악의적으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승적박탈이라는(하지만 그에게는 정식 승적이 없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짐을 지운다. 하지만 이를 계기를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하게 됐고 1978년 중편 ‘만다라’로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았으며 장편으로 개작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소설 ‘만다라’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불가리아어 등으로 번역돼 해외에서도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이후 장편소설 ‘집’, ‘길’ ‘국수’, ‘꿈’과 소설집 ‘피안의 새’, ‘오막살이 집 한 채’ ‘붉은 단추’, 어른 동화 ‘염소’ 산문집 ‘먼 곳의 그림내에게’ 등등의 작품으로 신동엽창작기금과 행원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등을 받게 했지만 그에게는 ‘그의 만다라’를 완성해야 할 사명이 있었다.

바로 그의 삶을 옭아맨 숙명의 화두를 풀어야 했다. 그가 만다라‘에서 던진 ’병 속의 새는 어떻게 꺼낼 것인가?‘ 같은 어려운 화두는 바로 아버지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가족사를 풀어내는 일이다. 진사급제한 증조부 김창규가 한일합방 때 곡기를 끊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거나 중시조인 김상용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 함락 당시 화약에 불을 지르고 자폭했다는 그의 집안 내력을 굳이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우리 민족의 역사는 그에게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인 것이다.

그 숙제 중 하나가 얼마 전 펴낸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조선의 혁명가들‘이다. 분단이라는 상황으로 독립운동사에서 제적당한 좌익독립운동가 열전이다. 지금까지도 금기시 되고 있는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미화도 없이, 있는 그대로 역사의 표피를 들춰내듯 조심스럽게 다룬 이 책에는 놀랍게도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를 비롯해 당시 한국문단의 주요 작가들인 이태준, 한설야, 임화, 이용악, 오장환 등과 천재음악가 김순남, 조선복식사 연구 권위자이자 근대미술의 거장 화가 이쾌대의 형인 이여성 등 문화예술계의 거두들의 활동상이 소개돼 있다.

총 71인 좌익계 인사들의 삶은 40년간 발품을 팔며 모아온 각종 자료를 통해 얻은 것으로, 그에게는 근현대사 속에서 풍랑 같은 가족사를 치유하는 개인적인 작업이자 숨겨졌던 민족의 불편한 진실을 수면 위로 들어내는 조심스러운 작업이기도 하다.

이렇게 쓴 4천매에 달하는 그의 육필원고가 대전문학관 수장고에 긴 여정을 마무리하고 안착했다. 아버지를 여위고 초중학교를 다녔으며 집필활동을 했던 대전에서 그가 그린 ‘만다라’ 하나가 편안하게 자리를 잡은 것이다. 참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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