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인구 13·15대 국회의원 |
조난을 당한 전후좌우를 살펴볼 때 마치 조난은 피할 수 없는 예정사항처럼 한심한 총체적 안전불감증 덩어리에 휩싸인 해운사의 부실에 무고한 승객만 희생된 것 같다.
또 조난 이후의 초기대응부터 사후수습과정에 이르기까지 일주일간의 행적을 살펴볼 때 정부당국의 실효적 재난대비시스템 부족, 언론보도의 과민한 선정적 태도, 국민 일부의 파국적 소요를 보채는 동요 등 호떡집에 불난 혼란의 형태로 치닫고 있는게 안타깝고 개탄스럽게 여겨진다.
필자는 63년전인 1951년 미국 여객선을 타고 태평양을 횡단한 경험이 있으며 그 때 생전 처음 배를 탔지만 '만일의 경우 조난을 당할 때 어떻게 처신하는가?'에 대한 상세한 교육과 예행연습을 하면서 12일간의 태평양 횡단을 체험한 것이 지금 이 판에 생생하게 교훈으로 되새겨 진다. 내 나이 19세에 소년장교(소위) 계급장을 달고 선배 장교 40명과 함께 미국공병학교에 수학하고자 부산항에서 미군 군용수송선에 탑승했다.
그 배는 미해군이 '워커 장군호'라 명명한 5000t급 수송선이었는데(세월호는 6300t) 12일간의 항해 일정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오클랜드 해군기지까지 가는 배였고 한국전쟁에 참여했다 귀국하는 군인이 승객의 대부분이었다.
워커호가 승선을 마치고 출항하기 전에 전 승선자에게 워커호의 오리엔테이션이 있었고 승선자의 승선규칙설명이 있었다.
출항 하루 후 배가 일본 규슈 남단을 스쳐 태평양으로 진입하고자 할 때 전 승무원과 승객들의 조난에 대비한 비상훈련이 있었다. 훈련방법은 하루에 두 번씩 발행하는 선내 뉴스특보에 실려져 모두가 숙지케하고 사전교육도 받았다. 이윽고 여객선에 온통 기적과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리고 모든 승객과 승무원은 구명대를 착용하고 갑판에 질서있게 모이게 했다.
그리고 갑판 측면에 비치해둔 구명정이 리프트를 타고 나타났다. 구명정의 탑승요령 시범이 있었고 구명정 내에 비치한 준비물의 사용방법 설명이 있었다. 위치를 알리는 연막탄, 3일간 버틸 수 있는 물과 비상식량 등이다. “여러분은 조난 시 3일간은 이 장비에 의지하여 살아 남아야 합니다. 늦어도 3일 내에는 항공기와 구조군함이 여러분을 구조할 것입니다. 만일의 경우이지만 여러분 모두 무사히 생환하십시오”라는 마이크 해설로 비상 훈련은 끝났다.
만일에 대비하는 완전무결한 예행훈련을 받은 우리이지만 더욱 신뢰하고 안도의 확신을 받기에 충분했다.
배가 태평양 날짜변경선을 지날 때 선내 뉴스와 안내 방송이 나왔다. “지금 이 배의 항로 남쪽 50해리에 강력한 태풍이 북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배는 예정항로를 변경하여 북쪽으로 우회 운행합니다. 여러분의 안전에 이상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으니 안심하시고, 다만 태풍전야의 물결을 헤치고 갈 것이니 배멀미에 유의하시고 예방약을 복용하시기 바랍니다.”
얼마 후에 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호사다마 좋아하는 나는 만류를 무릅쓰고 갑판에 나갔다. 멀리서 다가오는 태풍의 실태를 눈으로 보기 위해서다. 갑판 위는 난간을 꼭 잡지 않으면 날아갈 정도였고 먼 남쪽 하늘은 시커먼 먹구름이 완연했다. 선실에 돌아온 나는 목격담을 선배 장교들께 보고해 주었다. 선임 장교는 “지금부터 전원은 방송이 있을 때까지 절대로 갑판에 나가지 말 것”을 명령했고, 몇 시간 뒤에 선내 방송은 “이제 이 배는 태풍위험지구를 탈피했습니다. 여러분 안심하고 평상시 태세로 돌아가십시오” 라고 전했다. 그 날 저녁 선내 식당에서는 특식파티가 벌어지고 준비된 영화도 상영해 주었다.
63년 전 전쟁 중에도 수송선 항해 안전수칙에 이렇듯 완벽한 배려가 있었는데, 21세기 세계선진국 진입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해운업계와 관련 당국 및 배를 타는 국민 고객은 왜 이렇듯 안전불감증에서 홍역을 치르고 있어야 하나?
모든 선박은 풍랑이나 기타 외부 요인에 의해 뒤뚱거릴 때 원위치로 복귀하는 복원기능이 설계상 보장되어 있거늘 이번 사고는 이 복원기능장치가 멍들어 있었기에 발생했다고 한다.
이대로 국가사회가 온통 흔들리고 복원력(안정)을 찾지 못한다면 대한민국호(국가)가 침몰하게 될지도 모른다. 심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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