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웅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생체신호센터장 |
생체자기라는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기(氣) 또는 내공 등 알 수 없는 신비로운 현상에 연관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분명히 존재한다고는 하는데 느낄 수도 없고 측정을 해볼 방법조차 없으니 자기장은 자연스럽게 신비로운 그 무엇이 된다.
생체자기라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생체에서 발생되는 자기장이다. 인간 활동의 대부분은 생체의 전기활동에 의해 발생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도 뇌신경이 전기적으로 흥분하여 생기는 것이며, 평생 지치지도 않고 뛰고 있는 내 심장도 심근세포가 전기적으로 흥분하여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전기적으로 세포가 흥분하면 몸속의 전해질을 통해서 생체전류가 흐르고, 흐르는 전류 주변으로는 자기장이 발생하게 된다. 이것이 생체자기다.
내 몸에서 발생하는 현상인데 한 번도 느껴보지도 못하고, 심지어 그 존재조차 몰랐던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게 말하면 인체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은 우리가 느낄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미약하기 때문이다. 나침반을 사용하여 방향을 알 수 있게 하는 지구의 자기장, 즉, 지자기장과 비교를 해보았을 때, 뇌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은 약 1억 배, 심장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은 약 100만 배가량 약하다.
전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생체자기는 초전도양자간섭소자(SQUID)라는 현존하는 가장 민감한 자기장 센서의 개발로 측정가능해지면서 막연한 신비로움을 벗고 인체 연구에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한 예로, 뇌에서 나오는 생체자기를 측정하는 기술인 뇌자도는 의료임상현장에서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뇌전증(간질)이라고 불리는 뇌질환은 뇌의 과도한 전기적 흥분에 의해 발생하며, 뇌의 비정상적 흥분의 크기와 발생 위치에 따라서 가벼운 소화불량에서부터 대발작까지 다양한 증상을 보인다. 뇌전증의 발병인구는 의외로 많아서 100명 중에 한두 명이다. 즉, 서울시내에서 지하철에 타면 그 칸에 한두 명은 뇌전증을 갖고 있는 정도이다. 그 중에 20~30%는 약물치료가 효과가 없어서 수술적인 방법으로 뇌의 뇌전증 발생 부위를 절제해야한다. 뇌전증은 형태적인 이상이 아니고 기능적인 이상이므로 MRI나 X선 CT 등의 영상으로는 그 위치를 찾기 힘들다. 수술을 위해 막상 두개골을 열었는데 위치 파악이 제대로 안 된다면 수술은 길어지고 환자의 생명은 위험질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에 비침습적이고 비접촉적인 뇌자도가 매우 유용하다.
뇌종양 수술이나 중풍의 수술시, 건드리면 안 되는 부위가 어디인지를 뇌자도를 이용하여 효과적으로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다.
뇌질환 부위 수술시, 실수로 팔을 움직이는 부분이나 소리를 듣는 부분이 손상되면 팔에 마비가 오거나 귀는 멀쩡해도 소리를 듣지 못하게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장선상으로 뇌자도는 치매나 파킨슨병 등의 퇴행성 뇌질환의 조기진단은 물론 점차적으로 큰 사회문제가 되어가는 우울증,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 자폐증 등 다양한 정신질환의 원인을 밝히고 조기진단 및 진행정도를 평가하는데 활용가능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소비자들의 무의식 반응을 분석하여 홍보하는 뉴로마케팅이나 거짓말탐지기에서도 뇌자도가 활용 가능하다. 기존의 거짓말 탐지기에서는 훈련에 의해 호흡이나 맥박 등의 제어가 가능하여 검사를 피해 갈 수 있었지만, 범행현장의 모습이나 흉기 등을 알아봤을 때 나오는 뇌의 특징적 신호는 속일 수 없으므로 탐지기의 정확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
이처럼 초고감도의 자기장 센서를 이용한 생체자기 측정은 뇌기능의 이해와 함께 유용한 임상의료 장비로써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뇌자도 장비가 3대 밖에 없는 국내실정이 아쉽기는 하지만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20년 이상 축적된 기술을 기반으로 세계적 수준의 생체자기 측정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완성된 수준의 뇌자도 시스템 및 측정기술이 의료산업계와 연결된다면 선진국들에 의해 점유되어있는 고가의 국제의료기기 시장의 진출에 있어서도 큰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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