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용 충남지방경찰청장 |
코끝으로 전해오는 바람도 어제와 다르다. 앙상하기만 했던 도로변 나뭇가지에 새 잎이 돋아나고 겨우내 바싹 말랐던 잔디도 어느새 푸른빛으로 변해 있다. 지난해 12월 말 충남경찰청장으로 부임해 왔을 때하고는 또 다른 내포의 모습이다. 그때는 사방이 정말 적막하고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는 청사가 외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멀리 보이는 용봉산도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군데군데 울긋불긋한 꽃이 피고, 산 정상을 둘러싼 안개 아래 푸른 기운이 선명함을 더해간다. 짧은 시간이지만 뒤늦게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며 사색에 빠진 것이 호사였는지 청사에 들어서자마자 이런저런 보고가 이어진다.
때마침 청양서 형사들의 이야기도 들려왔다. 모 방송에 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청양의 독수리 5형제!' 나는 사실 그 얘기를 처음에는 그냥 흘려들었다. 으레 형사들이 범인을 검거하는 장면과 인터뷰하는 모습이 잠깐 나오겠지? 그런데 보고를 받고 나니 그런 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장애인 성폭력 수사를 끈질기게 파고들어 해결한 것은 물론 십시일반 경제적 도움까지 주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수사에 참여했던 형사들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나눔폴'이란 단체를 만들어 오랜 시간 동안 피해자의 경제적, 정신적 안정을 위해 도움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궁금하기도 해서 나중에 방송을 직접 보았다.
“그런 상황에서 모른 척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잠깐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나도 모르게 일상이 되어버렸고, 앞으로도 그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담담하게 인터뷰에 응하던 시골 형사의 우직한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방송이 나간 이후 익명의 독지가로부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컴퓨터를 기증하겠다는 전화가 걸려오고 나눔에 동참하겠다는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니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아침에 느꼈던 봄기운이 새로운 활력을 주는 것일까? 청양서 형사들의 행복한 이야기가 남긴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책상 위에 놓인 신문 스크랩이 또 다른 감동을 전해준다. 장애인이었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거동이 불편한 엄마와 힘들게 사는 두 자매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서산경찰서 동부파출소 경찰관의 선행 소식이 사진과 함께 실려 있었다. 생일 축하 케이크를 앞에 놓고 환하게 웃는 네 사람의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케이크에 꽂아 놓은 양초를 보니 분명히 두 자매 중 누군가의 생일날이었던 것 같다.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아도 행복한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었다. 이렇듯 바쁜 업무 속에서도 사랑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현장 경찰관들의 이야기가 하루의 시작을 가볍게 해준다.
이처럼 나는 오늘 아침 진정한 봄꽃을 보았다. 출근길에 보았던 벚꽃이나 진달래처럼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을 정도로 화사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향기를 가진 꽃이다. 현장과 주민 속에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 꽃. 자신만의 향기로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지 않을까? 그래서 사람은 모두가 꽃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처럼 아침 출근길에 코끝으로 느꼈던 행복한 그 향기가 오랫동안 가시지 않을 것 같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눠가며 누군가에게 행복을 전해 주는 사람. 아! 이래서 사람은 저마다 향기를 갖고 있다고 했나 보다. 꽃처럼 직접 그 냄새를 맡을 수는 없지만,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향기가 넘쳐나는 내포의 봄은 새로운 시작이고 희망이었으면 한다. 작은 나눔이 누군가에게는 행복을 주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되듯 작은 사랑이 모여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그런 봄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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