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찬 한밭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
충(忠)은 '임금은 마땅히 의로워야하고 신하(백성)는 마땅히 국가(임금)에게 충성'해야 하는 것이며, 효(孝)는 '부모는 마땅히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충·효 사상은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며 쌍무호예적임을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충에 대해 현대적 방향을 잘 보여준 예로 얼마 전 개최 되었던 소치동계올림픽을 들 수 있다. 애국심에 대한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던 신세대들에게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 사실이며 너와 나 누구랄 것도 없이 깊이 잠자고 있던 애국심을 일깨워준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충에 대해 생각하고 다시 한 번 새기게 될 계기가 될 뿐이지 최소한의 충은 우리가 서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아간다면 그것보다 더 큰 충은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충을 우선시 했던 것으로 역사는 말하고 있지만 그에 못 지 않게 효에 대해서도 소중히 생각해왔다고 할 수 있다. '효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누구나 부모님께 잘해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명확한 대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예로부터 부모님에 대한 공경을 인륜의 중요한 덕목이라 했다. '효'를 말할 때 '반포지효(反哺之孝)'를 비유하곤 한다. 이는 '젊은 까마귀가 어미한테 먹이를 씹어 다시 먹인다'는 뜻으로 어버이의 은혜에 대한 자식의 공양의 도리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날 효에 대하여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동안 효라고 우리가 인식해왔던 것들이 현실과는 너무 거리가 멀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한다. 사회 환경이 판이했던 시대, 깊은 산속을 헤매며 부모님을 위해 산삼을 캐오는 자식이야기나 추운 겨울날 강가에서 잉어를 잡아다주는 자식이야기도 있다. 그 대표적 예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심청전'에서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 드리기 위해 인당수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들 수 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볼 때 그 얘기들에 나오는 효자·효녀들이 했던 일들은 우리에게 상상만으로도 어려운 일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런 어려운 일들이 아니더라도 하고자 노력한다면 아주 사소한 일들에서도 효를 행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의 패륜가정이나, 학생이 선생님을 때리는 등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서 실종된 '효' 문화를 되찾을 수 있는 뾰족한 대안은 없을까?
선조들의 시대에는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면 관직에 등용될 수 있고, 임금에게 충성을 다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효자의 가문에서 충신이 나온다”고 했고, “효는 어버이를 섬기는 것이 시작이고, 임금을 섬기는 것이 중간이고, 입신해서 도를 행하는 것이 끝이다”라 했다. 이를 '충'보다 '효'가 우선한다는 것으로 뜻으로 보면 가정이나 학교에서 그 무엇보다도 효에 대한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효 교육을 이수하면 상급학교 진학에 가산점을 준다든지 입사나 공무원 시험에 가산점을 준다면 조선 시대 만큼은 아니더라도 효의 중요성이 사회에 뿌리내리게 되고 최소한 패륜(悖倫)이라는 말이라도 없어지지 않겠는가 하는 궁핍한 생각도 해 본다.
현대적인 관점에서의 효는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부모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헤아려서 해드리도록 노력하고 부모는 자식이 잘되는 방향으로 지도해야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효는 가정윤리로서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과 정신을 의미하고 충은 국가윤리로서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나라사랑 정신을 나타내는 것이니, 충과 효를 외래사상으로 보거나 종교적으로 배타시하는 등의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의 고유사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과 실천하려는 자세가 중요할 것이다. 온고지신이란 말이 더욱 새삼스런 오늘날 충과 효를 바탕으로 진정한 교육과 더욱 더 인간적인 사회가 유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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