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욱]우리마을의 그물망을 촘촘히 하는 길

  • 오피니언
  • 사외칼럼

[하태욱]우리마을의 그물망을 촘촘히 하는 길

[중도춘추]하태욱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대안교육센터장

  • 승인 2014-03-19 14:03
  • 신문게재 2014-03-20 16면
  • 하태욱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하태욱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 하태욱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대안교육센터장
▲ 하태욱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대안교육센터장
최근 서울시의 '부모커뮤니티 활성화사업'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우연한 인연이 닿아 교육전문가라는 자격으로 이 사업의 초기부터 함께하게 되었지만 그 의미를 보면서 애착이 매우 높아진 사업이다. '부모커뮤니티 활성화사업은' 서울시가 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지역 내 부모들의 자조적 모임 및 활동을 발굴, 육성, 지원하고자 2012년부터 시작되었다. 풀뿌리 자조모임에서부터 지역 내 기관 연계 모임까지 부모 및 자녀교육, 아이들의 정서함양 및 건강 증진을 위한 정보교류 및 프로그램 활동 등에 초점을 맞춰 400~500여만원을 지원해왔다. 첫 해에는 114개 커뮤니티가 지원했던 것이 3년차인 올해는 244건 접수에 106건 선정으로 규모와 호응이 커졌다.

올해 심사를 하면서 특별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새롭게 변화된 심사방식이었다. 주민이 직접 심사에 참여하는 민주적 결정구조를 위해 최근 유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과 유사한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인접 자치구 별로 10~20여개의 지원 커뮤니티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각자 자신들의 커뮤니티와 지원 사업에 대해 설명하면서 합격을 호소하는 방식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그 자체로 한판 흥미있는 놀이판이자 서로가 서로에게 열리는 배움의 장이 되었다. 발표를 들으면서 재미있게도 이 사업의 제목인 '부모커뮤니티 활성화 사업' 중에 각자 방점을 찍고 있는 단어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제안자는 '부모'에 방점을 찍어 사업 내용이 온통 자녀교육에 집중되어서 방과후 프로그램이나 심지어 사교육 프로그램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찾기 어려웠다. 또 다른 제안자는 '사업'에 지나치게 방점이 찍혀있어서 제출된 계획서는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 제안자 자신이 하고 싶은 사업을 커뮤니티라는 외형으로 포장한 느낌이 너무 강했다. 특히 지역의 복지관이 등 기관들이 중심이 되어 제출한 제안서들은 이전에 그 기관에서 하던 사업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심사를 하면서 필자가 찍은 방점은 '커뮤니티 활성화'였다. 이 사업의 가장 큰 가치는 그것이 풀뿌리 '커뮤니티'를 발굴·육성하여 지원한다는 사실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커뮤니티가 형성될 가능성만 보인다면 그 쓰임새가 하찮아보여도 얼마든지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 가장 큰 반발은 '봉사'를 주제로 잡은 제안자들로부터 나왔다. 커뮤니티라면 예를들어 자기들 밥값, 찻값은 스스로 내는 것이 당연할 터인데 어찌 소외계층을 돕겠다는 자신들에게는 빡빡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저희들끼리 놀러 다니겠다는 사업에는 후한 평가를 보이느냐는 항변이었다. 물론 우리 사회에 여전히 소외된 영역이 많고, 이들을 돕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러나 복지가 지나치게 '시혜'의 형태로 만들어질 경우 여러 가지 폐해가 나타날 수 있다. 수혜자가 혜택에만 의존하여 자립이 불가능하거나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늘상 존재한다. 또한 예산이 줄거나 끊기면 더 이상 혜택을 줄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결국 공적 자금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공적 자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돌봄의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느냐의 문제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풀뿌리 공동체가 만들어진다면 공공의 복지 혜택은 이를 더욱 풍성하게 자라게 할 자양분이 되지만 공동체 없이 쏟아 부어지는 공적 예산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일 수 있다. 따라서 공적자금의 일부를 지역의 풀뿌리 공동체를 발굴·육성하는데 쓰는 것은 우리 사회의 그물망을 더욱 촘촘하게 짜는 중요한 정책이 될 것이다. 우리가 동네에서 모여 재미있고 즐겁게 살다보면 그렇지 못한 이웃들에게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진화가 될 것이다. 또한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고 했을 때 그 아이를 키우는 것은 행정구역으로서의 지역이 아니라 촘촘하게 짜인 관계망이다. 대전에서도 얼마 전 '좋은 마을 만들기'라는 사업공모가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전 곳곳에서 더 많은 공동체들이 더 촘촘해진 관계망으로 신나고 즐겁게 살 수 있었으면, 그리고 그 힘으로 주변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함께 챙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4.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5.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