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백주 건양대 예방의학과 교수 |
이들 가정은 아버지가 지병인 방광암으로 약 10년전 사망하기 이전에는 경제적으로 보통 가정이었다가 치료비 부담으로 인해 결국 아버지가 먼저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고 이후 어머니의 식당일로 근근히 먹고 살다가 어느날 팔을 다친후 이 작은 수입원마저 끊기게 되었다고 한다. 두 딸 가운데 언니가 고혈압과 당뇨가 있었지만 치료비 부담으로 제대로 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두 딸 모두 만화 그리기에 관심이 많았으나 현실적으로 생활은 어려웠고 카드 돌려막기를 하다가 신용불량자가 되어 취직도 어려웠다고 하니 고단한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사건이 있은 후 간암말기인 택시기사가 아내와 함께 집에서 자살하는 등 유독 질병과 어려운 생활고에 연관된 죽음 관련 기사가 최근 늘어나고 있다.
질병으로 가계비 부담이 심각한 경우를 '파국적 의료비 지출가구'라고 하는데 이러한 파국적 의료비 지출가구가 수년전부터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이미 이러한 비극은 예고된 것이다. 한편 이들이 주로 앓고 있는 질환은 암과 심뇌혈관질환 등 만성질환인데 이에 대한 건강관리를 지역사회 생활현장에서 적극 수행하면 심각한 합병증 발생 확률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차의료 안전망이 취약하여 막을 수 있는 질병이 방치되고 있는 측면도 고려되어야 한다.
한국은 전국민 건강보험이 시행되어 낮은 의료비로 양질의 의료를 누리는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못하는 의료영역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수년전부터 OECD 국가들 가운데서 가장 빠르게 의료비가 늘어나고 있는 국가가 되었다. 즉, 정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은 진료비 통제를 주된 목적으로 가지고 있는 반면 90% 이상 민간의료기관에 의존하고 있는 의료현장은 새로운 의료기술과 서비스 개발을 통한 의료기관 간의 환자 유치 경쟁이 활성화되고 있어 진료비 증가 요인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또 하나의 의료안전망인 일차의료 안전망은 건강검진을 적시에 하고 제때 암 등 만성질환을 발견할 뿐 아니라 후속관리를 적극하자는 것이다. 개원의사들의 질환관리를 적극 협조하고 지역사회 및 가정방문을 통한 건강관리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의료진과 환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중요하지만 보건소의 방문건강관리 간호사 방문활동과 개원의들과의 연계가 필수다. 이러한 목적으로 보건소마다 방문건강관리 간호사를 뽑아서 활동하도록 하고 있지만 사회복지사들처럼 이들 인력수도 방문해야 할 취약계층 수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고 그나마 일용직이어서 근무 의욕이 낮은 실정이다. 정부에서는 이들을 무기계약직으로 하여 신분상 안정을 도모하라고 일선 지방자치단체에 요구하고 있지만 기초자치단체에서는 낮은 재정자립도와 공무원 인건비 총액계약제 한도내에서 우선순위가 낮은 보건분야 공무원 정원 늘리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 사회복지사 확충과 활동강화도 필요하지만 미리 아프지 않도록 돌봐주는 의료안전망 즉, 방문건강관리 간호사 등 의료인도 함께 확충되고 활동강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는 국민들의 의료비 본인부담을 높이지 않으면서도 건강보험에서 보상하는 의료서비스 범위를 넓혀야 하고 또한 사회복지안전망에 못지않게 보건의료안전망 확충 즉, 공공의료기관 확대와 방문건강관리 담당 공무원 증원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공공의료 정책 투자가 국민들의 행복에도 기여하지만 안정된 일자리 창출과 경제발전에도 중요한 기여를 한다는 것이 인구고령화 시대 외국의 경험에도 제시되고 있다. 소득이 높은 기업들일수록 높은 세부담을 통해 공공보건의료 안전망을 잘 구축해야 불필요한 비용낭비를 줄일 수 있다. 과거 경제도약을 위해 도로, 부두, 공항 등 사회자본이 기업발전에 큰 기여를 했듯이 이제 다시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을 통해 만들어야 할 중요한 사회자본이 '의료안전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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