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기세가 심상찮다. 1월 17일 전북 고창 씨오리 농가에서 처음 발병. 두달만에 땅에 묻힌 가금류가 1000만마리를 넘어섰다. 사상 최악의 기록, 과거 4차례의 AI발생시 평균 지속 기간 97일. 얼마나 더 많은 피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두렵다. AI 창궐하면 닭·오리 묻고, 구제역 유행하면 소·돼지 묻는 사후약방문식 축산 정책. 살처분과 소비위축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농가. 그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카메라 앞에 둘러앉은 높으신 분들의 삼계탕, 삼겹살 시식행사. 매년 되풀이 되는 그림, 불편하다.
설상가상 천안 AI 발생농장에서 기르던 개에서 'H5형 항체'가 나왔다.(개의 체내에 바이러스가 침투했으나 면역체계가 바이러스를 이겨냈다는 뜻). AI가 조류에서 포유류로 이종 감염된 국내 첫 사례. 천방지축 병든 닭을 날로 먹어서인지, 고약한 철새의 분변세례를 받아서인지 발병 원인은 아직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당황스러워 보이는 정부 당국. 과거 4차례의 경험(?)이 있고, 다른 나라에서 유사 사례가 보고됐음에도 가금류외 다른 가축종에 대한 처리지침이 마련돼 있지 않다. 닭, 오리처럼 살처분 해야 할지, 별도로 관리해야 할지…. 말그대로 무대책. 인체감염 가능성은 희박하다지만 농장내에 격리돼 처분을 기다리는 'AI 개'의 상황이 개운치 않다.
현재의 축산과학으로 AI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천수답 비오기 고대하듯 철새 떠나기만을 기다릴텐가. 농가의 관리 부실탓으로 책임을 몰아가는 것은 더더욱 안될 일이다. 국가가 관리하는 축산과학원도 뚫린 상황에 명분도 염치도 없다.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축산농민들이 애지중지 병아리 보살펴 닭으로 성장시키듯 정부도 허술한 방역체계에 살을 붙이고 다듬어 철통 방역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 멀쩡한 가금류까지 마구잡이식으로 땅에 묻는 살처분 방식에 대한 회의론, 공장식 사육환경을 개선해 가금류의 면역력을 강화하자는 주장 등 한사람의 말도 허투루 들어선 안된다. 내년 이맘때 또 한번 철새탓, 농가탓 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코흘리개 아이들의 허풍선이 과자처럼 마트 한켠에 등장한 1+1닭, 그 신세가 애처롭다. 자식처럼 키운 닭·오리 지키겠다며 자녀들 고향길 막아섰던 이땅의 축산농민들, 더 이상 그들이 고통받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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