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영]청년실업 방치는 '묻지마 범죄' 예약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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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영]청년실업 방치는 '묻지마 범죄' 예약하는 것

[시사 에세이]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 승인 2014-03-17 13:47
  • 신문게재 2014-03-18 16면
  •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묻지 마 범죄'가 일상화되고 있다.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대상에게 치명적인 폭력을 가하는 사건의 발생빈도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묻지 마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이들이 대부분 남성이라는 것이다. 또한, 상당히 오랫동안, 일하기를 원했지만, 일할 기회를 찾지 못한 상태로 지내왔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실업 또는 미취업 상태의 남성들은 범죄와는 무관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성별과 직장 유무의 다른 조합(예, 일자리를 잃은 여성)에 비해 유독 일자리를 잃은 또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남성 중에서 '묻지 마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자리의 주된 기능은 우리에게 경제활동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생존에 필요한 재화를 획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자리의 또 다른 주요기능은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학교에 간다'라는 말은 공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공간에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직장인들에게 '회사에 출근한다'라는 것은 돈을 번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오늘도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직장은 돈을 버는 곳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직장을 잃게 되면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지만 동시에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회가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특히 남성들은 직장과 그 직장에서의 직위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과 인간관계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남성들은 직장이 없다는 사실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회를 거의 박탈당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당사자에게는 사회 전체가 자신을 집단적으로 따돌리는 것 같은 사회, 심리적 충격이 가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규범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이 속한 사회의 규범을 점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범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인 사회적 상호작용으로부터 단절되면, 한 사회의 규범이 개인의 마음과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은 급격히 약화된다. 너무 당연해 보이는 규범조차도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재확인되지 않으면 개인의 행동을 제어하는 규범으로서의 힘은 약화된다.

일하기를 원하고 열심히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일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은 좌절감을 일으킨다. 그리고 좌절은 자신을 좌절시킨 대상에 대한 분노를 야기한다. 여기에 더해서 직장이라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공간으로부터 배제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의 빈도는 급격히 감소한다. 그 결과, 현실 규범을 재확인할 기회를 찾지 못하게 된다. 자신을 좌절시킨 사회에 대한 분노와 현실 규범에 대한 검증력 상실이 결합되면 이제 '묻지 마 범죄'를 저지르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는 끝나는 것이다.

'묻지 마 범죄'에 대한 대책으로 범죄자에 대해 단호하고 엄격한 처벌이 강조되기도 한다.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강한 처벌을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이미 현실 규범에 대한 검증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더 강력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고 해서 이들이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조절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묻지 마 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일자리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음과 행동의 적절성을 점검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실업문제를 방치한 채로 '묻지 마 범죄'에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하는 것은 모기들이 알을 낳는 웅덩이는 그대로 놔두고 눈에 띄는 모기만 열심히 잡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현재의 청년실업 문제를 내버려두는 것은 미래의 '묻지 마 범죄'를 사회적으로 예약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업문제는 한 사회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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