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필호 한국화학연구원 글로벌협력팀장 |
NIH 경험 중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경제적 가치 이상의 선한 가치와 사회적 책임감을 고려하는 연구 자세를 배웠다는 것이다. NIH에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연구자가 많았는데, 문화와 언어가 다른 연구자들이 공유했던 하나의 가치가 있었다. 바로 사회적 책임과 선한 가치였다. 연구를 수행할 시 파생되는 경제적 가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연구를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책임 있는 활동으로 생각한 것이다. 물론 연구 자체에서 느끼는 재미와 경제적 파급효과의 중요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안에 있는 내적 동기에 인류와 사회에 대한 공헌과 책임의식이 없다면, 장기적으로 인내와 투자가 필요한 연구의 몰입도와 성과는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단계 보다 크게 생각하면, 이는 글로벌 책임의식과도 연결된다. 세계적 미디어 비평가인 맥루한이 '지구촌' 개념을 언급한 지도 이미 반세기가 지났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외국인들을 위해 언어·문화 등을 무상으로 가르치는 '어덜트 스쿨'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이제 한국에서도 한국어 강좌 뿐 아니라 다문화 가정을 위한 방송까지 제작되고 있는 실정이니 세계화의 영향력을 새삼 체감하게 된다. 연구 현장에도 이제는 '글로벌 마인드'가 필요하다. 세계 시민으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자국민만을 위한 연구가 아닌 인류 전체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글로벌 책임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는 박사후 과정으로 NIH에서 결핵 신약개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결핵은 전염병 중 에이즈 다음으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질병으로, 지구촌 어디에선가 지금도 25초마다 한 명이 결핵으로 생명을 잃는 상황이다. 하지만 전세계 결핵환자의 80%정도가 개발도상국에 있다는 이유로, 다국적 제약사 관점에서 보면 대사성질환 치료제나 항암제 분야에 비해 관심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연구 분야이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제적 가치를 뛰어넘는 선한 가치와 글로벌 책임의식을 고려한 연구 자세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공적 개발 원조의 수원국 리스트에서 제외되면서,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위상이 바뀐 최초의 국가로서 이러한 글로벌 책무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필자가 몸담고 있는 출연(연)은 대학교와 기업에 비해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연구 수행에 가장 적합한 기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화학(연)에서 소외질병 치료제 개발을 위해 나이지리아와 긴밀한 협조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외에도 글로벌 에너지·환경 이슈 해결을 위한 인도네시아 코린도 그룹과의 바이오매스 개발 협력 등 다양한 분야의 국제협력을 통해 글로벌 이슈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
얼마 전 흥행했던 영화 'About Time'에서 'extraordinary ordinary life'라는 대사가 생각난다.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모든 것이 뛰어난 보석과도 같을 수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일상적인 연구현장에서 인류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선한 가치를 항상 마음에 품고 일할 때, 이것이 비범한 연구, 비범한 연구성과를 향한 첫걸음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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