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의곤 대전노숙인지원센터소장 |
15년 전 필자가 이곳으로 노숙인 쉼터를 옮기기 전에 있던 곳은 비교적 환경이 나쁘지 않은 주택가의 복지관이었다. 하지만 몇몇 입소자들의 음주 등의 문제가 주민들의 반대를 사게 되었고 결국 보증금 없이 한 달에 15만원이라는 임대료를 주기로 하고 오랫동안 비어있던 쪽방 건물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우리가 복지관에서 가지고 나올 수 있는 것은 합판으로 짠 사물함 몇 개와 낡은 책상이 전부였기에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보일러 가게에서 중고 보일러를 얻고, 도배지를 얻으러 다녔고 유독히 추웠던 그해 12월 내내 쉼터에 계신 아저씨들과 함께 여섯 트럭이 넘는 쓰레기를 치우고 공사를 했다. 내가 이 빈곤한 삶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것이 너무 힘들고 서러워 공사 중인 쉼터의 차가운 계단에 앉아 목 놓아 울기도 했고, 얻어온 보일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얼음장 같은 방바닥에서 지내며 깨지고 삭아버린 목재창문과 낡은 벽으로 스며들어 오는 차가운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기도 했다.
2004년 노숙인상담센터(현 대전시노숙인종합지원센터)를 시작하고 나서는 아무 이유 없이 1년 반 만에 쫓겨나 지금의 장소로 이사하기도 했다. 그렇게 10년이 넘게 쪽방에서 노숙인들과 함께 살을 부비며 살아오는 동안 나도 이곳에서의 삶이 그리 불행하지 않은 익숙함으로 적응되어 버렸다. 그런데 얼마 전 도로공사를 이유로 종합지원센터의 철거가 결정되었고, 이제 곧 이곳을 비우고 새로운 둥지를 찾아 떠나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지급되는 보상금이 적은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이사할 곳이, 우리를 환영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누가 노숙인들이 드나드는 시설을 반기겠는가?
최근 염전에서의 노숙인과 장애인의 인신매매식 노예노동의 실태가 한 언론에 밝혀지면서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지난 3일에는 염전, 양식장, 축사, 장애인시설 등을 조사한 결과 370명이나 되는 '염전노예'를 발견했다고 경찰이 발표하면서 더 큰 사회적 파장이 일고 있다. 하지만 노숙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고 인권을 침해당하고, 범죄에 이용되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만 이제야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과연 갈 곳 없고 도망칠 힘이 없어서 그 곳에 붙잡혀 있었을까? 가난하다는 이유로 인간의 존엄성조차 차별받고 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 당하는 이들이 노숙을 금지하고 쪽방이 철거당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곳이 그 곳은 아니었을까?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말하며 그 첫 번째 과제로 '복지부정'을 근절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부정수급 척결을 목표로 수급자에 대한 감시와 제재를 강화하고 있으며, 현재 국회에서 보류되어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에서는 기초생활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등을 통합방식으로 지급하는 방식에서 개별급여 방식으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하며 최저생계비의 개념조차 없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염려를 사고 있다. 물론 '부정수급' 방지라는 목표 자체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들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적대감까지 확대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에서 '부정수급자'보다 많은 것이 '수급'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매년 기초생활수급자의 수를 줄이고 있다.
개발을 좋아하는 우리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그나마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고 가난한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에게는 가난이라는 것 자체가 형벌 같은 것이다. 하지만 가난을 이유로 감시당하고 소외당하고 쫓겨나는 사회적 형벌이 주어져서는 안 된다. 어쩌면 가난을 외면하는 우리사회가 더 '부정'한 것은 아닐까?
걱정이다. 노숙인들과 함께 또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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