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관 대전문화예술의 전당 관장 |
인구 154만의 대도시 대전에서 대전 예당의 역할을 가늠해 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연상된 그림이기도 하다. 이번 칼럼부터 몇 번에 걸쳐 대전의 문화와 예술에 관한 즐거운 상상을 지도로 그려보려 한다. 먼저 공연장에 대한 상상이다.
왜 먼저 공연장인가. 공연장은 모든 공연예술이 창조되는 곳이자 그것이 유통·소비되는 곳이다. 예술가들은 여기서 그들의 꿈을 마음껏 펼치고 기획자들은 그 꿈을 매개한다. 소비자들은 예술을 감상하면서 또 다른 삶의 꿈을 꾸게 된다. 여러 사회적 관계 맺기가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많은 문화매개체가 있지만, 이토록 공연장만큼 복합적이지는 않다. 좀 과장하자면 한 도시의 문화와 예술이 집산 되는 곳이 공연장이다. 더구나 공공 공연장이라면 예술의 진흥, 시민들의 문화향유, 가치관을 형성시키는 예술교육, 문화복지 같은 공공성 높은 역할을 하게 되며, 여기서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 형성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광역시들이 일찍이 공공 공연장을 건립하여 나름대로 이런 역할을 하도록 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거의 모든 도시가 거점 공연장을 먼저 설립했다는 것이다.
'문예회관'이란 이름의 거대한 시설이 그것이다. 서울의 세종문화회관(1978)을 필두로 1980~90년대 벌어진 일이다. 다른 도시들에 비해 좀 늦기는 했지만, 대전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거점 공연장들이 제 역할을 해왔느냐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이 더 컸다. 그래서 보완장치로 각 자치구의 작은 공연장들이 잇따라 설립됐다. 말하자면 거점 공연장은 우수한 예술중심으로, 자치구 공연장들은 생활 속의 예술 활동을 부추기는 역할을 주문받았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유독 대전만큼은 자치구에 공공 공연장이 아직 없다. 다른 도시들과 달리 개관 이후 거점 공연장으로서 대전 예당의 운영이 잘 되어 온 이유도 있겠으나, 이제는 자치구별로 작은 공공 공연장들이 들어서서 그 나름의 역할을 할 때가 되었다. 대전시에 70여 개의 유사 공연장들이 있으니 예산 조달이 어렵다면 이들 중 자치구별로 하나씩을 리모델링하는 방법도 있겠다. 그다음의 흐름은 전용공연장이다. 전용공연장 또한 거점형이라 하겠는데 2000년대 들어서 이런 흐름이 두드러졌다. 뮤지컬과 대중음악 공연장이 서울에선 10여 개 운영 중이다. 대구와 부산도 추진 중이다. 최근에는 콘서트홀로 옮겨 갔다. 전국의 광역시 중에서 대구가 지난해에 먼저 스타트를 끊었다.
대구시민회관이 리모델링을 통해 훌륭한 콘서트홀로 탈바꿈한 것이다. 인천에서도 곧 포스코가 건립하는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이 개관을 앞두고 있다. 광주는 음악공연도 가능한 2000석 짜리 국립 아시아예술극장이 내년에 개관한다. 부산은 오페라하우스와 함께 국립으로 콘서트홀 건립을 구체화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울산과 대전만 전용콘서트홀이 없는 셈이다. 울산은 현대가 운영하는 큰 민간 공연장이라도 있다.
이제 대전이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 진 셈이다. 시민들이 좋은 공연장 메커니즘 안에서 생활 속 예술의 꿈을 꾸게 할 작은 공연장을 짓고, 더불어 전문적인 음향 조건을 갖춘 콘서트홀을 갖는 것이다.
이왕이면 복잡한 도시 한복판이 아니라 더 아름답고 조용한 숲이나 공원에 미국 콜로라도의 아스펜처럼 그럴듯한 음악제도 열리는 콘서트홀을 상상하는 것도 멋진 일이겠다. 뮤지컬이나 대중음악 전용홀은 정심화 홀이나 우송 홀을 리모델링하여 그 역할을 주는 것도 일책일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랜드마크형과 커뮤니티형이 조화를 이루는 대전의 공연장 지도가 완성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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