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윤 대전사랑시민협의회장 |
지금까지 같은 아파트에 오래 살면서 오가는 새 가족들을 많이 만났다. 새로 이사왔다하여 주로 아내인 분이 혼자서 떡을 돌리며 인사하는 경우는 보았지만, 이들처럼 가족이 함께 다니면서 가족을 소개하고 인사하며 떡을 돌리는 가족은 처음이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친척이 이사 온 듯 반갑고 친밀함이 지금도 맘속에 자리 잡고 있다. 안부가 궁금할 때도 있다. 그 가족과 만난 우리 아파트의 다른 가족들도 필자와 같은 친밀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 가족은 아파트의 한 라인에서 다른 세대들과 함께 이웃공동체연(緣)을 이룬 따뜻한 이웃이다.
우리는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건성으로 인사 한마디 건네지 않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올라가는 층수만 바라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친해보려 했다가도 같은 이웃들끼리 신분이나 나이를 따지고 더 가졌다 해서 은근히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려는 태도가 보여 맘을 닫는다는 이웃들도 있다. 인사하면 직장 부하직원 대하는듯한 자세로 인사 받는 것에 모멸감을 느껴 그 가족은 물론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까지도 싫어진다고도 했다. 사실 매일 조석으로 만나는 이웃들끼리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드리는 배려와 겸손이 있다면 피차 즐겁고 평안할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인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연령이나 신분을 따지지 않고 먼저 본 사람이 인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람은 개인적으로 친해져 맺어지는 사적인 세계와 이웃 간의 사회적 욕망을 실현하는 공적인 세계가 균형을 갖출 때 행복을 느낀다. 다시 말하면 밀실과 광장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현실은 후자가 빈약한 것이다. 우리사회가 그간 빠른 속도로 진행된 각종개발로 기존의 전통적 마을이 사라지고 다세대나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서로가 밀실 같은 익명의 공간에서 살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직접적인 관계의 연(緣)이 해체된 무연(無緣)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우리사회에 닫힌 주거문화에 일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동네에서 합창단을 꾸리고 마을텃밭이나 꽃밭정원을 함께 가꾸며 주민들이 모여 마을신문을 만들고 방송을 제작하며 아이를 함께 키우고 노약자를 돌보는 일이 조용하지만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이웃도 재발견하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이 서로 돕고 교류하는 이웃 간 나눔과 따뜻한 마을 공동체 문화가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다. 대전시만 해도 221개 이상의 좋은 마을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 수가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아파트의 수에 비해 작은 공동체마을들이지만 이러한 문화의 바람은 더욱 그 수가 확산될 것이며 훈훈한 마을공동체의 스토리를 만들어 갈 것이다. 그간의 획일적이고 폐쇄된 아파트가 서서히 열린 공동체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주거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현실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점에서 기대되는 변화의 문화라고 하겠다. 가족과 자녀들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지내기 위해서 서로알고 지내면서 울타리가 되어주고 훈훈한 이웃이 되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대전시가 추진하고 있는 신뢰와 배려의 새로운 공동체 '대전형 좋은 마을만들기' 정책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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